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지난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충격 속에 던진 한마디다.
오랜 `정치적 동지’이자 자신의 대권 후계자를 잃은 마음의 병은 아흔을 내다보는 DJ의 허약한 육신을 허물어트렸고, 김 전 대통령은 결국 두 달도 안돼 먼저 세상을 등진 노 전 대통령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관계는 남달랐다. 영남 이상주의자와 호남 현실주의자의 이질적 만남이었지만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집념과 불굴의 의지만큼은 닮은꼴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늘 긴장과 갈등 요인이 잠복했던 애증 관계로 점철됐다. 김 전 대통령은 후임자인 노 전 대통령에게는 계승의 대상이자 극복할 상대였다. 노 전 대통령은 국정 전반에 걸쳐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승계했지만 3김(金)시대의 낡은 유물인 지역주의와 권위주의는 그가 필생의 과제로 생각했던 정치개혁의 핵심 화두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악화일로를 걸었다. 2003년 초 대북송금 특검과 2005년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은 김대중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혔고, 후임자가 전임자에게 맞선 듯한 모양새는 참여정부의 핵심 지지층인 호남의 민심이반을 불러오기도 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대통합론’과 `사수론’으로 맞섰다. 그 바탕에는 김 전 대통령의 호남 중심론과 노 전 대통령의 전국정당화론이란 좁힐 수 없는 간극이 깔려 있었다.
그러던 차에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검찰수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의 구명 운동을 주도하면서 양측이 해묵은 앙금을 씻고 화해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뒤였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5월28일 서울역 분향소에서 나라도 그런 결단을 했을 것이라며 격정을 토해냈고, 이튿날 영결식에서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잠긴 권양숙 여사의 손을 부둥켜 잡고 오열했다.
이어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행사에서는 현 정부를 `독재정권’으로까지 몰아붙이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상징된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위기감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전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관계 등 3대 위기 대응을 위해 공동보조를 취하는 방안까지 고민했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6.15 행사에서 노 전 대통령과 저는 여간한 연분이 아니다라며 전생에 형제간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제 두 사람은 사후에서 해후, 이승에서 다 풀지 못한 인연을 이어갈 듯하다.
(서울=연합뉴스) 송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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