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파리에서 시작한 초현실주의 운동(Surrealism)은 다다이즘이 표방한 전통과 기존 통념의 전복이후 대안이 될 수 있는 예술 운동으로서 출발했고 스페인 출생의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는 이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 의해 발굴된다.
달리의 회화는 양식적으로는 사실주의적이지만 작품 안의 형상들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모마에 전시중인 ‘기억의 영속(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은 여러 개의 시계가 보이지만, 어떤 시계도 현실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과 무의식에서 보여질 수 있는 형상이나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만드는 것을 시도했는데, 이는 창작과 상상력의 영역을 넓혀주는 도구뿐만이 아니라 유럽 사회를 이끌어오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달리가 다른 초현실주의자들과 다른 점은 꿈의 기록이나 무의식의 흔적으로서 자동기술법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물이나 세상을 인지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시각적인 것에 의존하고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였다는 점이다. 이런 그의 열망은 오브제들을 만들면서 더 강하게 표출되는데, 바닷가재 모양의 손잡이를 가진 전화기나 유명 여배우 매 웨스트 (Mae West)의 입술 모양의 소파 등을 만들면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을 통해 고정관념에 도전하려했다.
많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이 작가 자신의 무의식이나 꿈을 표현하다보니 다분히 개인주의적이었던 반면, 달리는 집단주의적인 작품을 만들어 더 많은 대중들이 그와 함께 전통과 통념에의 도전에 동참하기를 희망했다. 그런 이유로 달리는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작업도 했다. 그의 이런 대중 매체들과의 실험은 브레통 같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게는 상업적으로 돈을 벌려는 행동으로 비춰졌고, 프랑스 공산당원이기도 했던 많은 초현실주의자들은 달리의 정치적인 행보(그는 히틀러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를 혐오했다. 1934년 달리는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퇴출당했고, 초현실주의 운동 역시 5년 뒤 2차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탄력을 잃게 된다.
* 강사 김지혜는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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