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오스틴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를 모집했을 때 응시자중 한 청년이 면접 인터뷰에서 자신이 얼마나 아나운서 직을 원하는지 열심히 설명했으나 떨어졌다. 대신 방송국측은 그에게 통신을 체크하는 일을 맡겼다. 하루는 방송국장이 그를 불러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사람은 말이야, 자신을 알아야 돼. 자넨 아나운서 소질이 없어. 다른 것은 몰라도 앞으로 아나운서 되겠다는 생각만은 버리게. 진심으로 충고하네”
이 청년이 바로 미 방송계에 신화를 낳은 월터 크롱카이트다. 아나운서 낙방 에피소드는 은퇴한 후 그가 밝힌 회고담 중 하나다. 그의 아버지는 네델란드계로 치과의사였다. 할아버지도 치과의사고 삼촌도 치과의사였다. 아버지는 집안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도 월터가 치과의사 되기를 희망했으나 그는 고집을 피워 방송언론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미국 방송계에서 전설의 인물로 불린다. CBS의 에드 모로우와 월터 크롱카이트. 모로우는 2차 세계대전을 보도한 아나운서로, 크롱카이트는 냉전시대를 대변하는 앵커로 불후의 명성을 남겼다. 이 두 사람 때문에 CBS는 NBC나 ABC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막강한 ‘CBS뉴스왕국’을 건설했으며 항상 적자를 내던 뉴스 프로그램을 흑자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월터 크롱카이트는 TV뉴스의 베이브 루스다. 지금은 고인이 된 퓰리처상 언론인 핼버스탐의 말에 따르면 과거에는 백악관 기자들이 모여 있을 때 대통령은 먼저 신문기자부터 악수하고 다음에 방송기자와 악수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TV뉴스가 막강해지면서부터 대통령이 TV기자와 제일 먼저 악수하는 풍토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친 프로그램 중 하나가 크롱카이트가 맡고 있었던 ‘CBS 이브닝 뉴스’였다.
월터 크롱카이트가 CBS의 앵커로 있던 19년(1962-1981)은 미국에게 있어 진통으로 점철된 시대였다. 케네디 암살, 월남전, 소련의 팽창, 민권운동과 킹목사 암살, 닉슨 하야, 개솔린 파동 등 미 국민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린 당황스런 혼란기였다. 이런 시대에 크롱카이트는 미국이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의 좌표를 보수와 진보 어느 쪽에도 지우치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로 매일 밤 설명했다.
암울한 시대에 믿음직스럽고 존경받는 TV앵커를 갖는 것도 국민의 복이다. 크롱카이트의 뒤를 이은 댄 래더는 너무 도전적이고 리버럴해 그의 뉴스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뛴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댄 래더는 적이 많아 거리에 나갈 때 항상 변장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경호원을 2명이나 데리고 다녔다. 마침내는 부시대통령의 병역을 둘러싼 오보 때문에 하차하는 불명예스런 피날레를 맞이했다. 크롱카이트는 한때 대통령후보 물망에도 올랐으나 한 눈 팔지 않고 언론인의 권위를 지켰다. 그는 항상 뉴스에 말려들지 않고 자신을 컨트롤 할 줄 아는 여유를 보였다. 크롱카이트 은퇴 후 CBS-TV는 새로 부임한 사장(에드 조이스)과 기자들과의 마찰로 풍비박산이 났으며 그 후 계속 뉴스 청취율에서 내리막길을 달렸다.
놓아야 할 때 놓지 못하는 사람은 정계는 물론 언론계에도 측은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크롱카이트는 자진해서 은퇴한 언론인이다. 현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가장 존경받는 미국인의 서열에 오르고, 경제적으로도 남부럽지 않게 살다 간 월터 크롱카이트는 보기 드문 행복한 언론인에 속한다. 그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앵커를 할 사람이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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