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노르망디 해안 근처 캉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평화박물관’이 있다. 이 대형 박물관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기록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노르망디 기록영화는 압권이다. 연합군의 상륙작전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독일군이 노르망디에서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를 한 스크린에서 반으로 나누어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장면이 영화 ‘The Longest Day’와 비슷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사실기록이라는 점이다. 20세 밖에 안 되는 순진한 얼굴의 미군들이 상륙정 안에서 껌을 씹으며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 바다에 뛰어내리자마자 비오는 듯한 총알을 피하기 위해 물에서 허덕거리는 광경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아, 전쟁이란 정말 잔인한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평화의 대가가 얼마나 비싼 것인지를 다시 느끼게 된다.
이 기록영화에는 노르망디 독일군 방어사령관인 롬멜이 해변의 진지를 시찰하며 부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등장한다. D 데이가 ‘The Longest Day‘로 불리게 된 것은 롬멜이 바로 이 해안시찰 현장에서 참모들에게 “연합군은 노르망디로 상륙할 것이다. 이때의 24시간이 독일이나 연합군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긴 하루(longest day)로 기록될 것이다”라고 말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롬멜은 명장이다. 그런데 노르망디 전투에서 왜 패했을까.
첫째 그는 날씨를 잘못 판단했다. 파고 높고 비오는 당시의 악천후에서는 제공권을 가진 연합군의 상륙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아내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베를린 근처 집으로 돌아가 본인이 “독일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던 전투당일 24시간동안 노르망디에 없었다.
둘째 롬멜의 상관인 폰 룬트스테트 원수는 팬더 기갑사단을 노르망디 해안에 배치해 상륙하는 연합군을 초전에 박살내야 된다는 롬멜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캉 근처의 중앙에 주둔시켰다.
셋째 히틀러는 평소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가능성에 반신반의해 롬멜의 의견을 여러 번 무시했다. 전략가들은 만약 롬멜의 주장대로 기갑사단이 해안에 배치되었더라면 오마하 해변의 미군고전을 고려할 때 연합군의 상륙작전은 실패했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노르망디의 수도격인 캉은 파리에서 자동차로 불과 2시간 근거리에 있다. 그런데도 파리진격까지 두달 반이나 걸린 것은 캉 근처에 정예인 독일 팬더 기갑사단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캉은 원래 고색 찬란한 도시였으나 노르망디 전투에서 연합군의 포격과 공습으로 도시의 3분의2가 잿더미로 변해 지금은 현대식 건물로 이루어진 전혀 다른 모습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바로 캉 근처 마을의 혈전을 그린 것으로 닐랜 브라더스의 실화를 드라마화한 것이다.
캉 박물관 관람이 끝나면 버스로 노르망디 전투현장과 미군묘지를 구경하게 되는데(70유로) 이 미군묘지에 ‘닐랜 형제’ 2명이 나란히 묻혀있다(밀러 대위는 가상인물). 노르망디를 돌아 보노라면 ‘만약에’ 라는 가상을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만약 6월6일 D 데이의 날씨를 롬멜이 오판하지 않았었다면? 룬트스테트가 롬멜의 의견을 수렴해 기갑사단을 해안에 배치했더라면? 히틀러가 노르망디 상륙 가능성을 오판하지 않았었더라면? 그후 2차 대전은 어떻게 되었을까.
올해 6월6일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65주년으로 오마하 비치를 내려다보는 콜빌 쉬르메르의 미군묘지에서 오바마 대통령 참석 하에 기념식이 성대히 펼쳐지는 모양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역사적인 교훈은 연합군이 왜 승리했느냐 보다 지도자의 독선과 오판이 어떤 비극을 불러오는가의 독일군 패인에 무게가 실려 있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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