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을 공부하여 그 아름다움을 깊이 사랑하는 나는 특히 고딕 미술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여 미술관에 갈 때마다 중세 미술관을 찾는다. 르네상스 미술과 바로크 미술이 외형적이라면 고딕 미술은 내면의 정신성이 높고 장식적이라 무척 아름답다.
열심히 책을 보고 미술관을 다니며 그리스 미술의 아름다움과 함께 중세 미술을 보며 감탄을 하던 중 몇 년 전 LA 카운티 뮤지엄에서 한국 옛 미술전을 보고 한국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학문적이라기보다는 직관적으로 미술품을 감상하는 버릇이 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이 서양 미술에 비할 수 없이 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 일본에 있는 고려 불화책을 보게 되었는데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던 세밀하고 내면적인 정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고딕 미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최고 최상의 아름다움을 고려 불화에서 발견하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세상에 이러한 고도의 아름다움을 지닌 예술품을 창조한 한국인의 마음이 놀랍고도 기쁘다.
도자기로서는 최상의 꽃을 피운 송나라의 화려하고 완전한 자기들에 비해 고려청자는 얼마나 깊고 우아하고 고결한가. 우리민족의 마음이 창조한 예술의 깊이와 격조에 홀로 말없는 기쁨을 누리곤 한다.
이조백자, 경천 사지석탑, 익산 미륵사지석탑, 금동미륵반가사유상, 겸재와 추사… 그토록 신비하고 아름답다는 모나리자의 미소도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미소에는 비할 수가 없고 천안문의 거대한 스케일도 비원의 아름다움에 비할 수가 없다.
현대 미술로서는 마티스와 세잔느, 피카소를 좋아하는데 우연히 한국 문화원 도서실에서 추사 김정희의 책을 몇 페이지 넘기다가 깜짝 놀랐다. 서양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표현한 세계를 훨씬 뛰어넘는 정신과 조형성의 세계가 맑고 심오하고 힘차게 전개되고 있어 동양인의 마음은 서양인이 알 수 없는 경지에 달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은 나의 직관만이 아니라 진실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토록 멋진 가구를 사용하던 한국인이 어쩌면 이렇게 조악한 현대가구를 쓰고 있을까. 한국인이 만들어내는 현대가구에 조상의 차원 높은 조형 감각을 이을 수 있지 않을까. 옛 가구의 모사품은 더욱 졸속하다.
그토록 아름다운 자기를 창조한 민족이 어쩌면 이렇게 천박한 그릇을 쓰고 있을까. 그토록 멋진 주거 문명을 살았던 민족이 어쩌면 이렇게 닭장 같은 아파트를 좋아할까.
그토록 자연스럽고 질박하고 생생한 민화를 즐기던 사람들이 어쩌면 이렇게 이상하고 졸속한 그림들을 붙여놓고 살까.
그토록 운치를 즐기던 민족이 어쩌면 이렇게 간판을 다닥다닥 붙일까… LA 한인타운을 지나가며 기가 막히는가 하면 한국의 신도시 풍경을 보면서도 기가 막힌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도 없는 도공들이 지녔던 저 깊고도 밝고 무한한 한국인의 마음은 분명히 우리들의 핏속을 흐르고 있는데, 첨예한 국제 경쟁 속에서 민족의 살 길은 창조적인 정신일 뿐인데, 대단히 볼품이 없는 한강다리의 추함을 바라보며 강물의 아름다움과 현대 도시의 기괴함에 한탄을 한다.
LA 카운티 뮤지엄에 한국 현대 작가전이 온다고 한다. 우리 미술의 현주소를 만나며 우리의 정신이 어디에 와있나 명징하게 바라보고 싶다.
박혜숙 /화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