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 가면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눈에 뜨인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넘쳐나는 줄은 정말 몰랐다. 호객행위도 스스럼없이 일본말로 외쳐대고 상점에 들어가면 아예 일본말로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한다. 식당의 모든 메뉴가 한글과 일본어로 프린트 되어있고 대부분의 종업원들이 간단한 일본어 회화를 한다.
아니 언제 이렇게 명동이 변했나. 3년 전만 해도 이렇지가 않았다. 강남 번화가에 비해 어딘가 처지는 맥없는 분위기였고 싸구려를 찾는 젊은이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먹거리도 신통치가 않았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꼭 명동에 머물 일이 있어 근처에 있는 호텔을 예약하려고 했더니 호텔마다 만원이다. 웨이팅 리스트에 올려 가까스로 방 하나를 겨우 구했다. 놀라운 것은 투숙객 대부분이 일본인이라 아침에 커피숍에서도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일본말이고 마치 내가 외국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것이 어색해 하루는 아침에 국립극장(구)앞 죽집에 갔더니 여기도 온통 일본 여성들로 만원이라 줄까지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미가본’이라는 이 죽집은 일본 관광객들로 인해 개업 이래 최고 매상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엔고 인상으로 인한 관공특수로 명동은 지난해에 비해 수입이 99.3퍼센트가 늘었다고 한다. 한국의 상가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최악의 불경기에 명동만은 반대로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한남동과 압구정동 시대는 가고 다시 옛날의 명동 시대가 열리는 것일까. 명동은 차 없는 거리인데다 남대문시장과 롯데 백화점, 먹걸이 골목인 무교동, 그리고 인사동을 이웃에 두고 있어 앞으로 한국관광지의 대명사로 등장할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명동 근처에서 자랐다. 더구나 대학시절 밤낮없이 명동을 쏘아 다녔기 때문에 명동은 나의 마음의 고향이다. 어릴 때의 기억으로는 어른들이 명동을 메이지쵸(明治丁)라고 불렀다. ‘명동’이라는 이름은 8.15 광복 후부터 사용 되었다. 일제시대에는 명동보다 충무로 1가와 3가 사이에 이르는 거리가 더 번창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백계 러시아인들이 옷가게를 하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광복이 되자 명동이 번창하기 시작했고 문인, 음악가, 연극인 등 모든 예술인들이 시공관(지금의 명동예술극장) 근처로 몰려들었으며 술집은 은성주점, 다방은 돌체가 아지트였다. 을지로 입구에 있던 ‘하동관’ 곰탕집이 몇년전 명동성당 올라가는 길 옆 골목으로 이사 왔는데 바로 그 옆이 왕년의 예술인 집합지로 낭만이 넘쳐흘렀던 은성주점이다.
그후 명동은 양장점의 거리로 변했으며 5.16 후에는 증권시장으로 모습이 바뀌고 그후 명동성당이 민권투쟁의 본산지로 등장하자 경찰이 항상 주재했다. 이때부터 무교동과 종로가 술집 중심지로 바뀌었다. 이어 강남시대가 열리자 명동은 완전히 2류 싸구려 거리로 밀려났다.
이 싸구려 이미지는 명동의 아킬레스건이다. ‘명동=싸다’의 개념은 엔화 강세 시대에는 호황이지만 엔화 약세일 때는 불경기를 불러 올수도 있다. ‘싸다’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만으로는 장사가 안 된다.
원래 명동의 전통은 낭만이다. 그런데 지금의 명동은 먹거리와 화장품, 의류만 넘칠 뿐 낭만이라고는 찾아 볼 길이 없다. 한번 찾아온 관광객을 다시 오게 하려면 거리에 낭만이 넘쳐흘러야 한다. 낭만을 되찾는 것 - 그것은 명동을 다시 살리는 묘약이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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