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디즈니랜드에 갔을 때의 일이다.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서 끝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갑자기 정지된 듯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앞쪽을 쳐다보니 놀이기구 탈 순서에 한 장애인이 있었다. 그를 옮겨 태우느라 시간이 다소 지연되었던 것.
그날 나는 한국과 사뭇 다른 신선한 문화적 차이를 느꼈다. 안전요원은 불편한 사람을 돕는 차원으로, 행락객들은 조금 더 지연되는 기다림 정도로, 그리고 정작 장애를 갖고 있는 본인조차 당당한 자신의 권리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그 상황을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지난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이날 서울 동대문 앞에서는 중증 장애인들이 장애인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그런가하면 보건복지부 앞에서는 한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장애인 인권 보장을 위한 노숙 농성이 이어졌다. 부산시에서는 장애인의 날 행사를 거부하는가 하면, 대구 장애인들은 대구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광주 지역 장애인들도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장애인의 피나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21일에는 대한민국 정부 안에 설치돼 있던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증진과>가 신설 13개월만에 폐지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장관과 장애인 시설을 방문해 장애인 복지, 인권 향상을 이야기 하며 그들의 노래에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는 사진이 모든 언론에 공개된 지 불과 하루만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정책은 아직도 미개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를 거듭해도 나아질 것 하나 없는 장애인 시설물은 물론 아직 풀어야 할 장애인 인권 과제는 너무 많은데, 정부는 늘려도 시원찮을 장애인 활동 보조인 서비스 예산을 508억원이나 삭감하고, 실질소득의 증가나 생활비의 급등 등 경제현황을 따져볼 때 실질적으로는 감소했다고 봐야 할 2009년 장애인 예산이 전년도에 비해 3.6% 늘어났다고 떠드니….
게다가 최소한의 인간답게 살기 위한 그들의 투쟁을 벌금과 과잉진압으로 탄압하고 장애인을 위한 사회 서비스는 외면한 채 장애인 복지 예산을 축소하기에 혈안이 되어있으니 말이다.
1981년 유엔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은 12월 3일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장애인이 4월 20일로 제정된 것은 그당시 집권세력이 방에 갇혀있는 장애인들에게 1 년에 단 하루라도 나와 따뜻한 햇볕이라도 보라는 눈물어린(?) 배려에서 정했다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잔인한 달 4월 속 장애인의 날. 그러나 한국의 장애인들에게는 1년 365일이 잔혹할 따름이다.
“대통령께서는 1년 중 장애인의 날 하루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지만 우리는 1년 365일 항상 울고 있음을 생각하며 정책을 추진해 주십시오.”라고 인터넷에 올린 울산의 한 장애인의 글이 애처롭다.
일회성 언론잔치를 치르는 허울좋은 장애인의 날 단 하루가 그들의 날이라면 나머지 364일은 마치 사회에 장애인이 없는 양 그들이 소외받고 있는 날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의 반대말은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다.
놀이동산에 놀러 나온 미국 장애인을 편견없이 바라보던 선진국민의 시각처럼 비장애인인 내가 먼저 그들을 바라보는 편견을 버려야 할 때이다. 차별 없는 한국을 만들기 위한 진정한 복지정책이 하루 속히 이루어지길 소망해본다.
권선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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