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엔 노란 꽃, 연보라 빛 등꽃이 장관을 이루었고 거리 곳곳 꽃나무에 꽃이 만발했다. 비오는 겨울 거리도 아름답지만 봄의 화사함과 찬란함은 더욱 아름답다.
마당엔 늘 하얀 야생 고양이가 찾아오는데, 가만히 서서 고양이의 눈빛을 바라본다. 이장희 시인의 ‘봄은 고양이로다’가 떠오른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어려서 국어시간에 이 시를 읽을 때에 무척 좋았는데 지금 읽어도 봄의 생기와 찬란한 아름다움이 그대로 생생히 느껴진다. 이처럼 좋은 시를 쓴 분은 누구였을까 궁금했는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이상화 시인에 대한 글을 읽다가 이장희 시인이 28세의 나이로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시대의 빼어나게 아름다운 시 한편과 시인의 죽음 - 속절없이 아름다운 봄날에 자꾸 시인의 죽음이 안타까워 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절망의 깊이를 숙고해 보곤 한다.
조금 알려진 그의 삶의 일화 중에 금붕어를 자꾸 그렸다는 얘기가 나오는 데 금붕어는 왜 자꾸 그렸을까 또 깊이 궁금하다.
봄의 생기와 죽음의 암울함 - 사방이 막힌 절망의 급박하고 처참한 상황을 극명히 그러낸 그림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소장된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의 ‘만류’(Gulf Stream) 라는 작품이다.
이장희 시인에게는 일제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고 불우한 가정환경과 친일파 아버지와의 갈등이 있었고 시인의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이 모두 하나가 되어 죽음을 향하게 했는데, 시대적 배경과 개인의 역사는 다르지만 인간은 때로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위기의 시련을 겪는다.
어둠이 깊으면 빛도 밝듯이 봄의 찬란함은 마음의 헤아릴 길 없는 어둠 또한 깊이 응시하게 한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봄이 우리들 중 누군가에게 있다. 때로 나의 마음도 호머의 그림 속 흑인처럼 암담할 때가 있다. 쳐들어오는 파도, 상어 떼, 부서진 배, 작열하는 태양, 속수무책으로 누워있는 흑인 청년. 이 그림은 정신의 위기를 표현한 그림인 데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세계의 정세를 느끼게 한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게 오바마의 밤이다. 그의 아내 미셸 오바마는 한 인터뷰에서 백악관 생활을 이야기 하면서 자신은 자신의 할 일만 하면 되지만 남편은 국가 경제를 회복 시켜야 하니 남편보다는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고 말했다.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이끌어 내야 하는 오바마의 쿨하고 여유 있는 겉모습을 바라보며 저 이의 밤은 얼마나 고뇌가 깊을 까 싶다. 경제난의 와중에서도 건강보험과 교육을 강조하는 그에게 우려에 찬 신뢰를 느낀다.
그림이 극단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호머는 “흑인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고 상어 떼에 먹히지도 않았고 배는 물에 떠내려가지 않고 구조되었다”고 전하라고 했다고 한다.
라디오에서는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힙합 음악으로 다시 만든 멋진 노래가 들려온다. 영성의 산의 정상에서 온 힘을 다해 미래의 세대에게 용기와 꿈을 전해주는 조상들의 사랑의 불꽃이 가슴 가득히 전해온다.
봄은 미친 듯이 흐드러지는 데, 때로 불현듯 이는 죽음에의 유혹을 딛고 일어나 두 팔을 활짝 열어 다시 맞으리라. 온 우주에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숨 쉬리라 미친 봄의 활기를.
박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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