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화당 부통령후보로 출마했던 새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가 ‘가자’와 ‘하마스’의 의미를 잘 모르고 미국이 하마스를 지지해야 한다는 식으로 지난해 CBS 인터뷰에서 대답해 웃음꺼리가 된 적이 있다. 삼손이 “여호와여, 나의 두 눈을 뺏은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한번만 힘을 주소서”라고 기도한 후 양쪽 기둥을 밀어 궁전을 무너트린 바로 그곳이 지금의 ‘가자’다. 삼손은 유대인이었고 데릴라는 블레셋 인이었다.
몇년전 팔레스타인을 잠시 둘러본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놀란 것은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위치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살고 있는 웨스트 뱅크와 가자는 허리가 잘려나가 이스라엘을 통과하지 않고는 가자에서 웨스트 뱅크를 갈수가 없게 되어있다. 한국의 지형을 예로 든다면 산악지역인 웨스트 뱅크는 충청북도이고 항구인 가자는 마산처럼 자리 잡고 있다. 중간 땅은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으니 말도 안 되는 국토형태다.
이스라엘이 국경을 봉쇄하면 도로가 막혀 팔레스타인의 경제가 완전 마비된다. 심지어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제대로 된 종합병원조차 없어 지금도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는 이스라엘에 건너와서 입원한다. 예루살렘의 경우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에서 막노동 하기위해 아침저녁으로 초소를 통과해야 하니 그 처지가 비참하기 짝이 없다.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이스라엘이 국경을 봉쇄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리가 이래서 나온다.
팔레스타인은 경제가 엉망인데 어떻게 먹고 사는가. 사우디가 연간 4억달러를 원조하고 있고 이밖에 이란, 시리아, 요르단의 과격단체가 원조해주고 있다. 산업이 전무상태고 이스라엘과의 싸움으로 얻는 외부 격려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살폭탄 유가족에게는 이슬람 광신세력이 1만5000달러의 위로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정부도 엉망이다. 중앙정부가 있는 ‘웨스트 뱅크’는 아라파트의 세력인 ‘파타’가 다스리고 있고 ‘가자’는 무장 강경파인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멸망을 목표로 삼고 있고 파타는 동예루살렘(골고다 언덕 등이 있는 관광 중심지)만 돌려준다면 이스라엘과 공존할 용의가 있다는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다. 파타세력은 이번 가자사태에서 동족인 하마스가 분쇄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눈치다. 심지어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하마스 지도자들의 거점을 정확히 알아내 폭격하는 것은 파타가 그 위치를 이스라엘 측에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다.
하마스가 이슬람 강경파의 돈줄에 목을 매고 있으니 이스라엘과 싸우는 시늉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형편이다. 더구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하마스의 인기가 내려가기 시작하자 이때부터 이스라엘에 대한 포격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가자침공을 유도한 셈이다. 부시가 “하마스의 포격이 오늘의 사태를 불러왔다”며 하마스를 비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무자비해 질수록 하마스의 투쟁은 아랍에서 영웅화 되고 사방에서 격려금이 쇄도한다. 게다가 이스라엘도 내달에 선거라 강경일변도다. 가자사태는 결국 이스라엘 여당과 하마스와 파타의 집권 싸움이다. 이 사이에서 선량한 가자주민들만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삼손과 데릴라의 비극이 있은 지 수천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 지역에서 반유대인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사실은 팔레스타인 분쟁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실감케 한다.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했는가를 판단할 수 없는 증오만 가득한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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