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속도를 체감한다. 50세가 되면 시간이 50마일로 달리고 60세가 되면 60마일로 지나간다는 말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한 살 먹으면 한 살 만큼 젊어질 수 없을까. 예를 들어 80세의 노인이 한 살 먹으면 79세가 되고 다음 해에는 78세가 되는 식으로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어떻게 될까.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젊어진다면 말이다.
헤밍웨이와 함께 미국의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대변하는 문인 중에 스캇 피츠제럴드라는 작가가 있다. 그의 작품 ‘벤자민 버튼의 이상한 케이스’라는 소설이 바로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경우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묘사한 내용이다. 태어날 때는 80세처럼 보이다가 세월이 갈수록 젊어지는 벤자민 버튼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린 단편소설이다.
요즘 극장가에서 상영되고 있는 ‘벤자민 버튼의 이상한 케이스’가 바로 그의 작품을 영화화 한 것인데 원작의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 원작에서는 얼굴이 쭈글쭈글하고 머리가 백발인 벤자민이 아기모습으로 태어나자 볼티모어의 부자가문인 부모들은 수치심을 갖고 그를 기른다. 성장한 후 벤자민은 아버지가 졸업한 예일대학을 지원했으나 대학당국은 60세가 되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입학을 거부해 마음에 상처를 준다. 그러나 벤자민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젊어져 50세 때 20세의 청년 모습으로 변한다. 그는 하버드에 입학한 후 풋볼스타가 된다. 그러나 점점 젊어지다 보니 중학생처럼 어려져 나중에는 하버드 풋볼팀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부인은 늙어 가는데 벤자민은 날이 갈수록 청년처럼 변한 사실이다. 나중에는 부부가 어머니와 아들처럼 보이게 되자 부인이 고민하다 못해 정신병에 걸린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아들보다도 더 어려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있을 때는 나를 삼촌이라고 불러야 돼”라는 말을 듣는 모욕을 당한다. 이 소설의 요점은 벤자민이 혼자만 젊어지기 때문에 가족이 겪는 비극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내용이 좀 다르다. 무대가 볼티모어가 아니라 뉴올리언스 부둣가다. 철물공장을 하는 벤자민의 아버지는 부인이 애 늙은이 기형아(벤자민)를 낳자 흑인 집 앞에 갖다 버린다. 이 백인 기형아를 흑인부부가 키우면서 1900년대에 겪는 온갖 시련과 어부가 된 벤자민의 기막힌 인생행로가 영화의 스토리며 장면마다 박력이 넘쳐흐른다.
대부분 원작이 영화보다 더 깊이가 있는 법인데 영화 ‘벤자민 버튼의 이상한 케이스’의 경우는 정반대다. 영화가 원작을 압도한다. 이 영화는 2008년 최고 화제작의 하나며 아카데미상을 받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컴퓨터 예술의 극치라 할 만큼 브래드 피트를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로 그리고 있다.
나이에는 ‘육체적 나이’와 ‘정신적 나이’가 있다. 젊은데도 늙은이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고 늙었는데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싱싱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이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결국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얼마나 늙어 보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늙은이처럼 행동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작가 피츠제럴드는 이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피츠제럴드의 대표작은 ‘위대한 개츠비’다. 그러나 그가 살아있다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이상한 케이스’를 보고 “나의 소설보다 더 작품성이 있네”하며 디지털의 마술에 감탄을 금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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