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예로부터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에서 가장 폭 넓은 도락의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일종의 두뇌싸움으로서 바둑과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 일화 중 하나가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관련된 바둑야사다. 유성룡은 당시 국수로 알려진 고수였다. 이런 유성룡에게 천치 비슷한 형님이 한 분 있었다고 한다.
그 형님이 어느 날 느닷없이 바둑을 한 수 두자고 청해와 유성룡은 마지못해 대국을 하게 됐다. 그러나 막상 판을 앞에 대하고 보니 전혀 예상 밖의 상황이 전개됐다.
유성룡의 돌은 거의 다 죽고 한 구석만 겨우 살게 된 것이다. 형님은 천치가 아닌 이인(異人)으로, 닥쳐올 임진왜란에 대비하도록 동생에게 바둑을 통해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야사에는 임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선조에게 대국을 청했는데 당시 영의정인 유성룡이 일산(日傘)에 구멍을 뚫어 둘 곳을 비추었다고 한다. 이렇게 훈수를 해 이여송을 무릎 꿇렸다는 설과 이여송의 체면을 생각해 무승부로 끝냈다는 두 설이 전해진다.
야사는 그렇다고 치고, 동양 3국에서 바둑은 때로 외교의 도구로도 사용됐다. 선조와 이여송의 대국도 바로 그 예다. 그리고 조선의 사신들이 일본이나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 나라의 최고수와 대국을 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전해진다.
한국의 이창호 9단이 춘란배 세계 바둑선수권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극심한 슬럼프를 보였던 그가 3년 만에 세계대회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이 대회 8강전에 오른 기사는 이창호 9단을 제외하고 전원 중국 기사였다. 이창호는 말하자면 7명의 절정의 중국고수들에게 둘러싸여 필마단기로 싸워온 셈이었다.
이창호가 이긴 상대는 모두가 중국의 정상급 기사들이다. 8강전 상대는 중국내 1인자 구리 9단이었다. 4강에서 맞붙은 쿵제 9단은 중국 기단의 떠오르는 별. 이들을 연파하고 중국과의 7대1 승부를 1대1로 좁힌 것이다. 그것도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이창호 9단의 결승진출은 여러 가지로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한때 세계 최강이었다. 그런 이창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둑이란 승부 세계에서는 한번 슬럼프를 보이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그 슬럼프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을 한 것이다.
세계기전에서 최근 들어 중국은 강세를 보여 왔다. 인해 전술로 몰아 부치는 중국 세에 한국바둑이 무너진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 중국 세에 일격을 가했다. 그럼으로써 한국 바둑의 무서움을 13억 중국인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킨 것이다.
바둑만이 아니다. 여러 분야에서 한, 중, 일의 두뇌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 싸움에서 제 2의, 제3의 이창호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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