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루아와 세파주
한국에서는 다음달부터 ‘떼루아’(Terroir)라는 와인 드라마가 시작된다. 한국에 불고 있는 와인 열풍을 반영하듯 이 드라마는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떼루아, 혹은 테루아라고 하는 이 프랑스어는 토양, 토지, 산지 등을 말하는 개념으로 영어로는 토양(soil)에 해당하는 말이다. 와인에서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할 때 테루아는 포도나무를 둘러싼 모든 자연환경을 총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한편 ‘세파주’(Cepage)란 포도나무를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포도 품종을 의미하는데, 테루아와 세파주는 와인의 품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들이다. 사람에 비유한다면 테루아는 자라 온 가정환경이 될 것이요, 세파주는 타고난 유전자라 하겠다. 즉 훌륭한 와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포도밭을 둘러싼 환경이냐 포도 품종이냐 하는 문제는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나기 위해 유전자가 더 중요하냐 환경이 중요하냐를 가리는 것만큼 복잡한 문제다.
▲테루아-와인이 자라나는 환경
먼저 테루아는 토양을 포함해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포도밭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적 환경 요소를 포함한다. 와인의 맛에는 빈티지나 포도재배 방법, 그리고 양조 방법 등이 큰 변수가 되지만 테루아의 영향은 특히나 지대하다. 와인의 재료인 포도가 땅의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내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안들은 프랑스인처럼 와인 양조를 위해 깊이 있게 포도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지만 동양철학적 관점에서 의외로 테루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이른바 ‘명당자리’가 테루아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좋은 와인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포도가 잘 익을 수 있는 태양이 필요하며, 생육에 필요한 만큼 적절한 물이 있어야 하고, 와인에 복잡 미묘함을 부여할 수 있는 낮과 밤의 일교차, 와인의 특색을 결정하게 하는 독특한 토질의 특색 등을 갖춰야 한다.
▲세파주-물려받은 유전자
와인을 만들기 위해 재배하는 포도나무들의 품종을 세파주라고 한다. 세파주로는 크게 레드와인을 만드는 것과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레드 와인을 만드는 대표적인 포도 품종으로는 카버네 소비뇽, 멀로, 피노 누아, 가메이가 있다. 화이트 와인의 포도 품종으로는 대표적인 것이 샤도네, 소비뇽 블랑, 리슬링, 뮈스카데, 게부르츠트라미너가 있다. 와인은 한 가지 품종으로만 만들기도 하지만, 특정한 포도 품종의 단점을 보완하거나 강한 맛을 순화시키기 위해 혹은 더욱 그윽한 맛을 내기 위해 여러 가지 품종의 포도를 섞어서 블렌딩(blending)하기도 한다.
▲테루아와 세파주
테루아는 반드시 포도 품종의 특징과 결부해서 이해해야 한다. 어떤 테루아는 특정 포도 품종에 좋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포도 품종에도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꺼운 껍질을 지닌 만생종인 카버네 소비뇽의 경우, 완숙에 이르기 위해서는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하는데 이때 자갈이 풍부한 토양은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낮에 태양열로 충분히 데워진 자갈이 해가 진 뒤에도 열을 방사하여 포도의 완숙을 돕기 때문. 또한 자갈 토양은 물 빠짐이 좋아 비가 내려도 금방 배수가 되므로 더운 토양을 좋아하는 카버네 소비뇽 같은 종에는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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