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TV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어떤 어린이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기자와 인터뷰하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11세의 이 소년은 자신이 이세상과 이별하는 것을 상당히 의미 있게 표현해 보는 사람이 숙연해질 정도였다. 브랜든 포스터라는 이 어린이가 기자와 나눈 대화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자 - 지금의 건강상태는 어떤가.
브랜든 - 저의 생명은 1주일을 못 넘길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 왜 나를 이렇게 빨리 데려가나 생각도 해봤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 아닙니까. 즐거운 삶이었습니다.
기자 - 소원이 뭐지? 제일 하고 싶은 일말이야.
브랜든 - 한가지 있어요. 내가 병원 갔다 오다 목격했는데 요즘 거리에 홈리스 피플이 너무 많더라구요. 그 사람들이 배고파 보여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고 싶어요. 그게 나의 소원입니다.
나는 이 소년이 소원을 말해보라는 기자의 질문에 아마 유명한 야구선수와 만나서 악수하는 것 아니면 디즈니월드를 친구들과 구경 가는 것으로 상상하고 있었다. 인터뷰하는 TV방송측도 그런 의도로 이 소년의 마지막 소원을 스폰서 해주기 위해 만나러 온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누가 나를 대신해서 홈리스들에게 먹을 것을 좀 갖다 줄 수 없는가. 나의 죽기 전 소원은 그것이다. 얼굴이 약간 부은 이 11세의 소년은 너무나 의젓했다. 시애틀 채널4 TV뉴스에 보도된 이 뉴스가 ABC-TV의 ‘굿모닝 아메리카’에서 다시 방영되자 수많은 시청자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브랜든 소년은 이 인터뷰를 마친 6일후인 지난 21일 숨을 거뒀다. 그러나 브랜든의 소원이 불씨가 되어 지금 미 전국에서 브랜든의 이름으로 홈리스에게 음식을 전달하는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독지가가 나섰다고 한다.
추수감사절 시즌이다. 올해는 경제악화와 실업률 증가(6.7%, 120만개 일자리)로 우울한 소식이 홍수를 이루다가 브랜든의 마지막 소원이 불우 이웃돕기에 불을 붙여 여기저기서 훈훈한 장면들이 벌어지고 있다. 콜로라도의 어느 농부는 브랜든에 감격하여 자신의 농장을 개방하고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나 와서 감자와 채소를 마음껏 가져가라는 광고까지 냈다.
브랜든이 어른들에게 보여준 것은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의 자세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가정에서도 부부싸움이 잦기 마련이다. 디트로이트에서는 실직자 부인들만 모아 남편 이해하기 특별강좌를 열고 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사회 한구석에서 “네 탓이야”의 증오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며칠 전 뉴욕의 롱아일랜드에서는 백인 고교생들이 매일 떼를 지어 길가는 히스패닉을 구타하다가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는 인종증오 범죄가 있었다.
이렇게 미 전국이 불안하고 인심이 각박한 시즌에 브랜든 소년이 남긴 메시지는 삶의 맛을 내는 소금 역할을 하고 있다. 생명의 촛불이 꺼져 가는데도 슬퍼하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가진 이 어린이의 죽음에서 우리는 행복과 불행은 사이즈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행복과 불행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사이즈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것이다. 고통 속에서도 남을 생각하는 ‘브랜든 스피릿’을 마음에 간직하자.
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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