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기자로 대통령선거를 현지에서 직접 지켜 본 것은 1975년 포드와 카터의 대결이 처음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무명의 정치인 카터가 선거연설 때마다 “나의 이름은 지미 카터입니다”로 시작해 “나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로 연설을 끝낸 장면이다. 닉슨 때문에 그 시절에는 ‘정직한 대통령’ 이미지가 국민이 바라는 지도자상 이었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정직했던 카터는 경제 불황과 호메이니의 등장, 이란 미 대사관의 인질사태에 따른 미국의 위신 추락으로 강경보수 노선을 들고 나온 공화당의 레이건에게 쓴잔을 마셨다. “당신은 4년 전보다 더 잘살고 있는가”라는 레이건의 연설은 당시의 화제였다.
다음으로 관심을 모은 선거는 부시(시니어)와 클린턴의 대결이다. 걸프전쟁을 승리로 이끈 현직 대통령 부시가 왜 하찮은 아칸소 주지사 클린턴에게 패했는가. 경제가 좀 나쁘긴 했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미국의 극우세력이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부시는 점잖은 와스프(WASP)이기 때문에 당선된 후 광적인 기독교 극우세력을 멀리했다. 게다가 선거약속을 어기고 임기 말년에 세금을 올리는 바람에 보수 세력의 미움을 샀다.
현 대통령 조지 W.가 공화당 후보로 선거에 이기려면 어떤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는 비결을 터득한 것도 바로 아버지의 뼈아픈 낙선에서였다. 무직인 그는 당시 선거운동본부에서 종교분야 득표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공화당 후보로 성공하려면 극우 기독교 세력을 끌어안는 것이 필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영화 ‘W.’에도 이 장면이 잘 그려져 있다.
지금 조지 W. 부시가 이끄는 미국은 너무 오른쪽(극우)으로 가있어 왕년의 소련처럼 이미지가 나빠졌다. 그렇지만 부시는 재선에서 아버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극우세력과 결별선언을 할 수가 없었다. 매케인도 극우의 피해자다. 그는 평소 당내에서 극우세력을 비판해 ‘공화당의 양심’으로 불려 왔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그의 나이와 표를 의식한 나머지 극우인 페일린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하는 바람에 ‘매케인답지 않은 매케인’이 되어 버렸다. 극우가 국민의 혐오대상으로 등장한 새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차점자인 허커비(아칸소 주지사)와 짝을 지었더라면 승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버락 오바마의 등장은 미국역사의 새장이 열리는 것을 뜻한다. 미국은 30년마다 다시 태어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에 의해 소셜시큐리티, 예금보호법등 뉴딜 정책을 통해 1930년대부터 사회보장제도가 실현 되었다. 30년 후에는 케네디에 의해 민권법과 이민법이 성안되어 흑인의 지위가 향상되고 아시아 이민의 물결이 파고를 이루었다. 그리고 마침내 35년 후에는 흑인대통령이 탄생했다. 뉴 제네레이션의 놀랄만한 개혁이 펼쳐질 것이다.
왜 세계가 오바마에 열광하고 있는가. 그가 희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그가 조직체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인물인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흑인인 오바마가 힐러리를 힘겹게 물리치고 매케인과 한판을 겨룬 지난 1년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정치연속극이었다. 지난 한해 한국에서는 인기드라마 ‘엄마가 뿔났다’가 시청률 1위였다면 미국에서는 ‘오바마 드라마’다. 선거가 끝난 후 이제부터 무슨 재미로 신문과 TV를 볼지 걱정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미국에 살면서 한번도 투표해본 적이 없다. 칼럼마감이 항상 선거일과 겹치는 화요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선거에는 새벽부터 설쳐 한표를 행사했다. 2008년 선거에서 방관자로 남아 있기에는 역사에 죄짓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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