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500억달러로는 부족..경기침체 막기 힘들듯
(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 미 정부가 14일(현지시간) 금융기관의 우선주를 매입하는 형태로 2천500억달러의 자본을 직접 투입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 구제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방안이 과연 현재의 금융위기를 해소하는데 성과를 볼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당초 금융기관의 부실자산 매입에 7천500억달러를 쓰기로 한 미 정부가 영국 등과 마찬가지로 은행에 자본을 직접 투입하는 고강도 처방을 쓰기로 한 것이 알려지면서 전날인 13일 뉴욕증시가 폭등하는 등 시장은 일단 화답을 했었고 리보(런던은행간 금리)도 이날까지 이틀 연속 떨어져 자금시장 경색도 다소 완화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방안이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시켜 안정화하는 데 적절한 조치라는 평가와 함께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아 더 많은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고, 경기침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전망도 우세해 현재의 위기를 헤쳐나가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 2천500억달러 충분한가 논란 =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이날 금융시장과 경제의 문제가 광범위하고 복잡하지만 이번 조치가 금융시스템의 신뢰를 회복시키고 경제를 견고하게 성장하는 쪽으로 되돌려 놓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버냉키 의장의 기대처럼 전문가들 사이에서 긍정적 평가도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채권 투자회사 핌코의 모하메드 엘-에리언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CNBC에 2천500억달러를 투입하는 것이 적절하고 충분하다고 본다면서 지금까지의 상처가 워낙 깊기 때문에 금방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치유과정에 있고 이런 대응이 미국 뿐 아니라 국제 공조에 의해 이뤄지는 점을 높이 샀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이번 조치가 (예전 것보다) 꽤 더 나아 보인다며 처음으로 정책이 위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당수 경제전문가들은 정부가 이 조치를 더 빨리 택했어야 하고 지금의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2천500억달러로는 충분치 않다는 쪽에 비중을 두고 있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모기지 부실을 불러온 주택시장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기관의 부실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이날 블룸버그TV에 2천500억달러로는 위기를 풀기에 충분치 않다며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필요로 하는 자본의 규모를 볼 때 정부가 은행 지분 매입을 배로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루비니 교수는 모기지 부실로 인한 금융기관의 신용손실이 3조달러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 기존의 1조~2조달러 보다 높여잡았고 미 주택가격도 앞으로 15%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이 보고한 신용손실액은 지금까지 6천370억달러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FAO 이코노믹스의 로버트 브루스카 수석이코노미스트도 CNBC에 자산부실의 근원이 된 모기지시장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어 이 문제가 고쳐지지 않으면 다른 구제책이 나오더라도 금융기관이 확충한 자본은 다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닥터 둠(Dr.Doom)’으로 불리는 월가의 비관론자 마크 파버는 2천500억달러를 투입하는 것은 뜨거운 난로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라며 서방국가들의 구제금융책은 근본적 문제인 과도한 차입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아시아 국가들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취해야 했던 것과 유사한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미 정부 보증 2조달러 달할 수도 = 이번 대책에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은행 간 거래와 기업들끼리 자금 거래와 결제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돕고자 선순위 무보증채권과 당좌거래 지급을 한시적으로 보장하는 `한시적 유동성 보장 프로그램(TLGP)’을 운영하는 내용도 포함돼 잘못되면 정부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으로도 예상되고 있다.
AP통신은 정부의 보증액이 거의 2조달러에 이를 수도 있어 국가부채 10억달러의 20%, 국내총생산(GDP)의 14%에 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미국의 8천500여개 은행과 저축.대부조합의 절반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모든 은행이 무보증채권 보장 프로그램에 참여를 택할 경우 그 보증액은 1조4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또 당좌거래 지급 보장도 FDIC에 5천억달러의 추가 보증 부담을 안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경기침체 막기에는 역부족 우려 = 이번 대책이 금융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키더라도 이미 금융위기 여파로 손상을 입은 실물경제의 침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따라서 금융위기에 이어 경기침체가 증시를 압박하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뉴욕대의 루비니 교수는 미국이 40년만에 최악의 경기침체를 경험할 것이고 증시의 랠리도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루비니 교수는 증시와 경제에 여전히 심각한 하향 리스크가 있고 경기침체의 심각성과 금융 손실의 심각성에 놀라게 될 것이라며 경기침체가 18~24개월 이어져 현재 6.1%인 미국의 실업률이 9%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크루그먼 교수도 새로운 위기 진정대책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이 ‘심각한 경기침체’로 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4주일 전 금융시장이 요동치기 전에도 상당한 경기 둔화의 모멘텀이 있었고 이를 뒤집지는 못할 것이라며 단지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폴 볼커 전 FRB 의장은 싱가포르에서 행한 연설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소비 수요와 산업생산에 타격을 주기 시작함에 따라 미국과 유럽이 상당한 수준의 경기침체에 직면할 것이라면서 많은 위기를 목격했지만 이번 위기와 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ju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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