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농장을 운영하는 피트 존슨. 존슨을 비롯한 하드윅의 농부들과 식품가공업자들은 일종의 농업협동조합 체제로 서로의 사업을 돕고 있다.
하드윅의 다운타운(위부터), 농부들의 클럽하우스인 ‘클레어스’, 두부공장 ‘버몬트 소이’의 앤드루 마이어, ‘피츠그린’의 유기농 양배추.
버몬트주 북동부에는 하드윅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한 때는 기업들이 번창하고 시끌벅적한 술집들과 포르노 극장으로 ‘리틀 시카고’라는 별명이 붙었던 도시였다. 그런데 이 모두가 문을 닫고 다운타운 상가들마저 군데군데 빠져나간 지금 인구 3,000명의 이 도시는 쇠락 일보직전에 이르렀었다. 그런데 이 마을이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농업이라는 한물간 업종에 주력함으로써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마을 사람들의 의지 덕분이다.
버몬트의 소도시에 새로운 사업 물결
일종의 농업협동조합으로 주민들 단결
투자, 마케팅 서로 도우며 일자리 창출
지역 농산물을 살리면 마을이 산다며 똘똘 뭉친 젊은 장인들과 창업자들이 하드윅의 분위기를 바꿔놓고 있다. 힘을 합쳐서 함께 사업을 추진·확장하고 투자자들을 함께 찾아 나서는 등 개인주의 전통 강한 이곳에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타운 매니저인 랍 루이스는 이렇게 추진된 창업들로 지난 몇 년간 75~1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고 말한다.
지역 농장에서 기른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파는 ‘버몬트 소이’의 업주 앤드루 마이어의 경우 지난 1월만 해도 고객은 5명이었다. 지금 그의 고객은 350명으로 늘어났다.
그런가 하면 치즈를 만들어 파는 재스퍼 힐 농장은 최근 320만달러 들여 치즈 숙성 창고를 지었다.
재스퍼 힐을 경영하는 마티오와 앤디 켈러 형제는 그동안 치즈를 지하실에서 숙성시켰었다. 그러다가 다른 업주들의 치즈를 같이 숙성시켜 주다 보니 장소가 비좁게 된 것이었다. 이들 형제는 최근 동굴형의 저장고를 새로 지어 총 200만파운드의 치즈를 숙성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업주들이 만든 치즈를 사들여 같이 숙성시킬 수 있게 되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된 것이다.
함께 힘을 모아 일하면 각자 사업을 더 크게 성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유기농 종자상인 ‘하이 모잉 유기농 종자’의 톰 스턴스도 깨달은 바이다. 그는 처음 취미삼아 종자들을 수집하다가 2000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그의 캐털로그는 2페이지에 불과했고 판매수익은 3만6,000달러에 불과했다. 지금 ‘하이 모잉’은 미 전국에 종자들을 팔면서 100만달러 사업체가 되었다.
하드윅에서 협동은 여러 형태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버몬트 소이’는 ‘하이 모잉’의 시설을 이용해 콩을 저장·세척하고, 지역 퇴비회사인 ‘하이 필스’는 ‘하이 모잉’에서 트랙터들을 빌려 쓴다. ‘하이 모잉’이 펌킨과 호박을 부셔 씨를 뽑아내고 나면 이들 부셔진 펌킨과 호박은 유기농장인 ‘피츠 그린’에서 사가서 수프를 만드는 데 쓴다. ‘피츠 그린’이 이런 식으로 ‘하이 모잉’으로부터 구입한 펌킨 및 호박은 올해 4만파운드였고 별도로 2,000파운드의 오이를 구입해서 피클로 만들었다.
‘피츠 그린’의 피트 존슨은 어릴 적부터 텃밭을 가꿀 정도로 농사에 취미가 있었다. 현재 그는 50에이커의 땅에 유기농 작물들을 재배하고 있다. 아울러 상업용 주방을 설치, 재배한 농작물들을 냉동식품부터 수프 등 온갖 형태로 가공을 한다.
지난 2년 동안 이들 농부들과 사업가들은 매달 한번씩 비공식 모임을 갖고 사업계획이나 마케팅 경험을 같이 나누어 왔다. 그리고 선전용 인쇄물을 만드는 데는 어떤 그래픽 디자이너가 일을 잘하더라, 정부 공무원들 중 누가 특별히 협조적이더라는 등의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아울러 필요한 식자재를 서로 사주고 선전해 주는 것은 기본이다. 예를 들어 사과 농사를 지어 애플파이를 만드는 사업가에게 그 지역 밀가루, 그 지역 버터와 계란을 이용하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자본을 서로 융통하기도 한다. 일종의 농업협동조합이다. 누군가 자본이 필요하면 30만달러 정도를 단기간씩 서로 빌려 쓰고 갚곤 하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한 회사를 방문하면 인근의 농장과 업소들을 모두 둘러보도록 안내하는 것도 일반적이다.
하드윅의 농부들은 식당도 같이 만들었다. 농부들의 클럽하우스라고 할 수 있는 ‘클레어스’ 식당은 50명이 1,000달러씩 추렴해서 만든 식당이다. 투자가들은 4년 동안 식당에서 음식 값을 할인 받는 방식으로 투자한 돈을 빼낸다.
이들 업주들은 비영리 기구인 농업경제센터를 시작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농업경제센터는 최근 15에이커의 부지를 매입, 농업교육센터를 시작할 예정이다. 지역의 사업을 더욱 확장하기 위한 계획이다. 아울러 지난달에는 버몬트 대학과 협약을 맺고 대학 교수와 학생들이 지역 농부들, 식품 가공업자들과 손을 잡고 마케팅, 연구뿐 아니라 운송 문제까지 같이 협력하기로 했다.
이들 창업주는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의 고학력 자녀들로 예리한 비즈니스 감각에 이 지역의 오랜 히피 스타일 이상주의를 접목시킨 것이 특징이다.
현지 생산 농작물을 이용하도록 장려하는 움직임은 버몬트에서 이미 상당히 활발하다. 에너지 사용과 식품 안전, 이웃에 대한 지원 등을 고려해 적극 펼쳐져 왔었다.
그래서 10여년 전만해도 뜨뜻미지근했던 지역 먹거리에 대한 반응이 지금 뜨겁게 달아오른 것이 하드윅으로 보면 반가운 것이다. 자기 지역의 농작물을 이용하는 것이 마을을 살리고 재건하는 길이라고 하드윅 주민들은 믿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해 보이던 것들이 지금 현실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협동을 하면 많은 일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하드윅 주민들은 실감하고 있다.
하드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같은 사업 형태는 장차 미국의 수많은 지역에서 따라하면서 중요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산업화와 세계화로부터 시계추를 뒤로 돌려 전근대적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 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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