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자유낙하..올들어 25조달러 증발..실물경제도 침체
(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 지난 9월15일 미국 4위의 투자은행(IB)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 이후 본격화된 금융위기가 한 달째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대공황도 이겨내며 158년을 이어온 리먼 브러더스의 몰락은 충격 그 자체였고 이후 누가 또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세계 금융시장은 아무도 서로를 믿지 못해 자금 유통이 메마르는 마비 상태로 치달았다.
이 과정에서 몰락 위기에 직면한 세계 최대의 보험사인 AIG는 미 정부에 넘어갔고 월가를 호령하던 IB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금융지주회사로 변신하며 생존의 길을 찾기에 바빴다.
금융위기가 악화되면서 공포는 전세계 실물경제의 침체로도 번져 세계 증시는 폭락을 거듭하며 나락으로 추락했다.
위기에 직면한 각국 정부는 금리인하 공조 등 전례없는 조치에 나섰지만 금융시장은 ‘백약이 무효’한 상태에 빠져 아이슬란드가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것으로 우려되는 등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이 다시 오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까지 일고 있다.
◇ 세계증시 자유낙하..금융시장 패닉 = 리먼브러더스 몰락 직전인 9월12일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1,421.99였다. 그러나 약 한 달이 지난 10월 10일의 다우지수는 8,451.19로 26%나 폭락했다.
미국 정부가 금융위기를 불러온 모기지 부실 자산을 정리하기 위해 마련한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고 미국과 유럽 등 각국 중앙은행이 공조한 전례없는 금리인하 조치 등 각종 대책이 취해졌지만 금융시장의 위기는 진정되기는 커녕 악화일로를 거듭하고 있다.
다우지수는 이번주에는 10,000선에 이어 9,000선까지 쉽게 무너지며 5년전 수준으로 추락했고 유럽과 아시아 증시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다우지수가 이번주에만 18.2% 하락해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뒀고 영국 런던의 FTSE100 지수는, 프랑스 파리의 CAC40지수,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DAX지수도 20% 넘게 폭락하며 최악을 한주를 보냈다.
블룸버그 통신은 전세계 전세계 증시에서 이번 주에만 4조달러가 날아갔고 올해 들어서는 총 25조달러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같은 금융시장의 모습을 ‘논리가 아닌 공포가 지배하는 상황’이라고 최근 평했다.
자금시장의 경색도 갈수록 심해져 ‘돈 가뭄’이 금융회사는 물론 기업들도 몸살을 앓게 하고 있다.
국제 자금시장의 기준 역할을 하는 리보(런던은행간 금리)는 연일 상승하면서 5%에 육박했다. 10일 3개월짜리 달러 리보는 0.07%포인트(7bp) 상승한 4.82%를 기록, 올해 최고치로 치솟았다.
NCL 스미스&윌리엄슨의 국제채권담당인 로빈 마셜은 블룸버그통신에 중앙은행들이 유동성을 공급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많은 경우 자금이 그들에게 다시 돌아올 뿐이라며 서로에 대한 불신의 공포로 돈이 돌지 않는 현상을 설명했다.
◇ 커지는 경기침체 공포 = 금융시장의 요동의 저변에는 위기의 원인이 된 주택시장의 침체의 지속으로 어디까지 문제가 확산될지 모르는 불안감에다 실물경제 타격으로 전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미 노동부가 지난 3일 발표한 9월 미국의 일자리는 15만9천개 감소, 2003년 3월 이후 최대의 감소폭을 기록했다. 미 공급관리협회(ISM)가 1일 발표한 제조업 지수는 9월에 43.5로 전달의 49.1에서 크게 떨어져 9.11 테러 후 월간 최대 하락폭을 기록하는 등 고용시장은 악화되고 제조업 경기도 흔들리고 있다.
유럽의 경우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15개국) 국내총생산(GDP)이 2.4분기에 전분기 대비 0.2% 감소해 경기침체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미 침체에 들어섰다는 의견들을 보이고 있다.
전미실물경제협회(NABE)는 6일 48명의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3명중 2명이 미국의 경기침체가 이미 시작됐거나 올해 침체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 저널(WSJ)과 블룸버그통신이 각각 경제전문가 52명을 상대로 한 조사결과도 미 경제가 침체에 진입했다는 평가로 나왔다. 특히 WSJ의 조사에서는 미국의 국내 총생산(GDP)이 3.4분기에 이어 4분기, 내년 1분기까지 연속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반세기 여만에 처음 3분기 연속 감소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8일 세계경제전망보고서에서 세계 경제가 1930년대 이후 최대의 금융시장 위기에 직면해 중대한 경기하강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올해와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9%와 3.0%로 기존의 전망치보다 0.2%와 0.9%포인트 낮췄다.
하버드대의 마크 펠드스타인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시장의 요동이 지난 30년간 가장 길고 깊은 경기침체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 대공황 다시 오나 = 세계 증시의 폭락과 경기침체의 우려는 1930년대 세계를 흔든 대공황의 공포도 불러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현재의 경제 상황이 대공황 만큼 심각한 수준이 아니고 대공황 때와는 달리 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공황이 다시 올 가능성을 적게 보고 있다.
대공황 당시 1931년부터 1941년까지 10년간 미국의 실업률은 25% 정도에 달했고 국내총생산(GDP)도 크게 감소했고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수준의 경제적 고통을 겪었지만 미국의 실업률은 9월에 6.1% 수준이고 GDP도 아직 감소하지 않았다.
또 대공황이 발발하자 당시 정책 당국은 금융회사 징벌을 위해 금리인하 대신 오히려 금리인상 정책을 폈고 보호무역 조치를 취함으로써 위기를 증폭시켰지만 현재 각국 정부는 금리인하와 유동성 공급 등 공격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는 점도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미 시카고대 교수는 7일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기고한 글에서 현재의 금융위기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것이지만 생산이나 고용에 미치는 영향으로 볼 때 훨씬 작은 위기라면서 세계가 대공황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세계경제의 침체나 대공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위기의 근원을 치유하는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크리스 메이어 미 컬럼비아대 경영대 선임 부학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단기적으로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위기의 원인이 된 모기지 시장과 주택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어 부학장은 이어 장기적으로는 금융기관들이 더 많은 자본을 보유하도록 강제하는 등 전세계 금융시스템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태는 한 국가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고 전 세계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ju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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