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월가의 증권시장 위기와 관련해 조명을 받는 단어가 ‘1929년’이다. “1929년 이래 처음” “1929년 때와 상황이 비슷”이라는 등의 표현이 경제해설과 기사 속에 자주 등장한다. 1929년은 미국의 경제 대공황이 일어난 해다. 이 1929년을 가장 실감나게 그린 소설이 바로 퓰리처상을 받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다. 수많은 서민들이 은행에 집을 차압당하고 고향을 떠난다. 오클라호마의 소작인인 톰 조드의 아버지는 농장주에게 이렇게 묻는다.
“70년을 이곳에서 살아 왔는데 당신은 왜 우리를 쫓아내려 하는 거요?”
“내가 아니야. 회사가 하는 일이고 회사는 은행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 거지”
톰의 가족들은 왜 경제 불황이 닥쳤는지도 모른 채 짐을 꾸려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당시 캘리포니아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유랑민들로 무허가 판자촌이 생겨났는데 이 빈민촌을 ‘후버빌’(Hooverville)이라고 불렀다. 후버대통령의 경제정책 실패로 생겨난 달동네이기 때문이다. 1,200만명의 실업자를 낸 1929년의 경제대공황은 왜 일어났는가.
불경기가 이어져 대공황으로 변한 것이 아니다. 기가 막힌 호경기가 계속되다 공황이 일어난 것이다. 미국에서 1920년대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20s)’로 불린다. 대량생산이 시작되어 포드 자동차가 1,500만대나 팔려 나가고 하이웨이가 닦여져 주유소와 모텔이 붐을 이루고 교외에 주택단지가 들어서는 등 전국에 돈이 넘쳐흘렀다. 돈이 넘치니 주식시장으로 몰릴 수밖에. 이래서 부자들은 엄청난 돈을 벌었다. 이것을 본 일반국민들도 앞 다투어 증권투자를 하다가 주식 값이 한계에 이르자 고무풍선이 터져 버린 것이다.
문제는 흥청망청 1920년대의 대통령이 모두 공화당이라는 사실이다. 하딩, 쿨리지, 후버 등 공화당이 12년간을 내리 집권하면서 기업위주의 정책으로 재벌과 부자를 대량생산해 놓았다. 대기업의 세금을 깎아주고, 규제를 대폭 완화 시키고, 돈을 마음대로 빌려 멋대로 쓰게하니 이윤이 극으로 달리게 되고 결국엔 거품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한탕을 한 부자들은 정보수집 덕분에 재빨리 뒤로 빠져 도망가고 막차 탄 서민들만 재산을 날리게 하는 것이 거품경제의 종착역이다. 지금 경제수습의 열쇠를 쥐고 있는 폴슨 재무장관도 얼마 전까지 골드만삭스 회장이었다. 그는 이 회사에 몇 년 재직하면서 7억달러의 개인재산을 이룩한 부자다. 그의 관심이 월가 구제에만 쏠려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빈부의 차이가 심해지면 자본주의 체질상 경제파탄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자들을 옹호해온 것이 부시의 경제정책이다. 1929년 당시에도 빈부의 차이가 극에 이르렀었으며 이같은 현상은 지난 몇 년간 다시 일어나기 시작 했는데도 정부가 손을 쓰지 않아 이지경이 된 것이다. 연간 몇 십억 달러씩 벌어 보너스로 나누어 가지다가 망한 회사들을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해 준다니 -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구해주기 싫다고? 그럼 경제공황이 오는 거야. 일종의 협박이다. 인질로 잡힌 국민들은 공황을 피하기 위해 정부의 구제안에 마지못해 동의하기 마련이다. 머리에 권총을 갖다 대고 동의를 요구하는 격이다.
미 전국에서 주택차압을 당한 서민이 지금 200만 가구에 이른다. ‘후버빌’이 아니라 ‘부시빌’이 형성되고 있다. 서민들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알지도 못한 채 고통을 당하고 있다. 파티는 부자들이 벌이고 뒷치닥거리는 서민들이 해야 한다는데 보통사람들의 분노가 있다.
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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