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되면 미국 공동묘지에서 펼쳐지는 이색적인 광경이 있다. 한복을 입고 성묘를 온 코리언들이 묘지를 수놓고 있는 장면이다. 옆자리에서 장례를 지내는 미국인들이 “오늘이 코리언들에게 무슨 날이지?”하는 표정들이다. 추석에서 성묘는 빼놓을 수 없는 절차로 한국인의 효 사상을 가장 실감 있게 나타내는 장면이다.
몇년전 LA타임스 기자가 “가을에 한국을 여행하는데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려면 무엇을 보아야 하느냐”고 물어 오길래 나는 “추석 때 전국에서 펼쳐지는 성묘 장면”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이 미국기자는 한국여행에서 돌아온 후 “코리언의 효 사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한국인들의 부모를 생각하는 자세를 부러워했다.
한국의 K대 총장이 들려준 이야기다. 스웨덴에 사는 딸집에 갔을 때였다. 어느 날 TV뉴스에 스웨덴 노인들이 데모하는 장면이 나오길래 딸에게 “노인들이 왜 데모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사회복지 제도를 수정하라”는 내용이라고 했다. 사회복지 불만? 아니 스웨덴은 세계에서 사회복지 제일 잘 된 나라인데 왜 노인들이 데모하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더니 딸의 설명이 기가 막혔다.
정부의 사회복지가 너무 완벽해 가정파괴가 되고 있는 현상을 규탄하는 데모라는 것이다. 스웨덴은 노인복지가 잘 되어있어 이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방치하는 경우가 많고 찾아오지도 않는다. 노인들은 먹고 사는 데는 불편 없지만 너무 소외되어 있고 고독하다. 정부가 자식을 대신해 노인들에게 효도하는 셈인데 그것은 생화와 조화의 차이다.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인들의 효는 신기하고 감탄스럽기까지 한 모양이다. 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한국이 인류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효 사상이다”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통신의 발달로 인해 오늘의 현대문명은 외형적인 가치에만 치중되어 있으며 획일적인 것이 특징이다. 전통문화는 후진국 문화처럼 간주되고 서양화 하는 것만이 현대화이고 발전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스웨덴 노인들의 고독을 보라. 복지 일등인 나라가 자살률이 으뜸인 나라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족이 뻗어가려면 정신적인 받침이 있어야 한다. 로마가 예루살렘을 파괴하기 전 유대인의 정신적 지도자인 랍비 벤 자카이는 로마 사령관을 찾아가 한 가지를 부탁했다. 유대인의 전통과 탈무드를 연구하는 마을 야브네를 불태우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성전건물보다 유대인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 생존의 비결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유대인에게 전통문화 지침서인 탈무드가 없다면 세계 곳곳에 흩어져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유대인의 단합이 가능할까.
한국이 이민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세계 곳곳에 한국인이 뻗어가고 있다. 한국인이 한국인 다울 수 있는 전통적인 사상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될 때다. 한국인의 자랑스런 전통은 효 사상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맺는 최초의 인간관계다. 효를 백가지 행실의 근본으로 간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효 사상 강조는 우리 나이에 옆구리 찔러 절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런 차원에서 이야기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효도는 인간성과 도덕성 회복운동이다. 전통을 모두 내팽개친 서양화, 미국화는 한국인을 웅담 없는 곰의 존재로 만들기 쉽다.
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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