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피라밋 가까이서 기념촬영을 하면 배경에 돌밖에 안 보인다. 피라밋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전경을 다 집어넣고 사진을 찍으려면 1마일 정도 뒤로 물러나야 한다. 파리의 에펠탑도 마찬가지다. 에펠탑 앞에서는 전경 촬영이 불가능하다.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만 더 가면 ‘트로카데로’라는 곳이 나오는데 확 트인 여기서 사진을 찍어야 에펠탑을 밑에서 꼭대기까지 넣은 촬영이 가능하다. 특히 밤에 보는 에펠탑의 현란한 불빛은 절경이다.
지난 봄 이곳에서 에펠탑 사진을 찍다가 나도 기념촬영을 하고 싶어 사방을 둘러보는데 한국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유럽 관광지에서 사진 찍어 주겠다고 다가오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이들은 사진 찍어 주는 척하고 뒤로 물러가다가 돌아서서 카메라를 들고 삼십육계 줄행랑이다).
마침 중국인 젊은 남녀가 눈에 뜨이길래 그들에게 “사진 한 장 찍어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그들도 나에게 부탁했다. 몇 장 서로 찍어준 다음 “대만서 왔느냐”고 물으니까 “베이징에서 신혼여행 차 왔다”고 했다. 학생인줄 알았는데 신혼부부라니 더욱 놀라웠다. 중국에서 여기까지 신혼여행을 왔다? 아무리 안 들어도 6,000달러는 써야 할텐데... 잘나가는 중국인들의 8개월 봉급이다. 한푼을 아끼는 중국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당신들은 바링허우인가”라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바링허우’는 1980년 이후 태어난 20대를 일컫는다. 덩샤오핑의 산아제안 정책인 독생자녀제(1가구 1자녀)이후 태어났기 때문에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키워진 세대다. 그래서 이들은 샤오황디(小皇帝), 또는 비아냥으로 ‘신인류’라고도 불린다. ‘바링허우’는 한국의 ‘오렌지족’처럼 분수를 모르는 골치 아픈 세대의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적어도 올림픽 이전까지는 그랬었다.
문화혁명을 겪지 않은 이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모르며 저축 같은 것은 생각도 않고 돈을 쓴다. 기아선상에서 문화혁명을 겪은 후 뼈 빠지게 고생하는 부모에게 효도할 생각은 조금도 없고 자기를 위해서라면 돈 아까운줄 모르고 펑펑이다. 샹하이의 쇼핑가인 화이하이루의 밤거리를 메우고 있는 젊은이들이 바로 이 ‘바링허우’들이다.
이들이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새로 태어났다. 성화 봉송이 3번이나 꺼지고 유럽에서 베이징 올림픽 참가거부 운동이 일어나자 “중국민족과 바링허우의 자존심을 살리자”고 외쳤으며 그중 파리 개선문 집회에서 연설한 유학생 리환(李洹·26)은 하루아침에 영웅이 되었다.
또한 바링허우 가수인 리위춘(李宇春)도 요즘 올림픽노래 ‘소년 중국’을 불러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등장했다. 올림픽 선수들과 자원봉사자의 90퍼센트가 바링허우이고 테러진압에 차출된 공안경찰도 바링허우다. 요즘 중국 언론들은 “바링허우는 중국의 희망”이라고 치켜세우고 중국은 올림픽과 스촨 지진을 통해 쿵첸탄줴(空前團結, 지금처럼 단결한 적이 없다는 뜻)를 이루었다고 자랑하고 있다. ‘못말려’ 바링허우가 애국을 외치면서 갑자기 중국의 희망으로 이미지 탈바꿈을 한 것이다.
총이 아닌 인터넷으로 무장한 바링허우의 등장으로 중국이 달라지고 있다. 신혼부부들이 유럽여행 갈 정도의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세계의 어떤 생산업체도 1억5,000만명의 ‘바링허우’를 고객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386세대인 바링허우의 등장이고 중화사상의 재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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