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통조림·분유에 밀가루까지 비축
캘리포니아에 지진이 날 때마다 강조되는 것이 비상 대비다. 지진으로 사회 기간시설들이 파괴되어 며칠동안 운전도 못하고 집에서 전기, 개스, 상수도를 사용할 수 없게 될 경우에도 살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으라는 것인데 일리가 있다고 수긍하며 준비할 마음만 먹고 흐지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구급약·비상 연료 집안에 차곡차곡
비상용 물품 챙기는 미국인 갈수록 늘어
사실 미국엔 그런 사람들이 많다. 자기 주변에 닥칠 위기가 결국엔 그렇지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거나 자신에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거나 혹시 그렇더라도 그때 생각하면 된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매서추세츠주 커밍튼의 19세기식 2층 농가에 사는 캐시 해리슨(56)은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집안 구석구석에 가루우유 깡통과 수백 파운드의 밀알과 귀리, 쌀, 정수용 알약에 치약, 치솔, 휴지를 쌓아 놓고 태양열 화덕과 밀폐 보존해 놓은 씨앗 등으로 비상시 가족이 6개월은 지탱할 채비가 되어 있다.
미국에 개솔린이 떨어지면 식품공급 체인은 9일이면 가동이 중단된다는데, 핵전쟁이건 생물테러 공격이건 최악의 경우에도 집안에서 버틸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해리슨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책도 썼다. ‘만약의 경우:예기치 못한 사태가 나도 자족하는 법(Just in Case: How to Be Self-Sufficient When the Unexpected Happens, Storey Publishing, $16.95)’은 실용적인 정보가 가득한 설명서 스타일의 책이다.
개척자 같은 낙관주의에 실린 지혜들을 담은 이 책은 해리슨이 폭넓게 읽은 비상대비 및 통조림, 치즈 만들기, 벌목 등에 관한 서적을 기반으로 한 것인데 화학전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해야 할 일들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누가 내게 핵폭탄을 떨어뜨릴 리야 없겠지만 9.11 이후, 특히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가 난 다음에는 누군가 나를 구하러 와주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어요”
해리슨은 30년 전쯤부터 비상대비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2년 전 지역 주민들과 함께 석유가 없어지면 일어날 일들에 대해 그린 ‘교외생활의 몰락’이란 영화를 본 이후 더 진지해졌다. 이웃 사람 몇 명과 자급자족을 장려하는 그룹을 만들어 장비와 요령을 교환했다.
비상대비라면 무기부터 챙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해리슨 일가는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아무도 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용병이나 종교적 이유로 1년치 식량을 비축해야 한다고 믿는 몰몬교도들이 많이 읽는 관계 서적들을 독파한 후 해리슨은 비상 대비에 대한 훈련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보통의 주택소유주들을 위해 책을 쓰기로 했다. 옷장에 옷은 가득 차 있는 데 단추도 달 줄 모르고, 자동차를 타고 온갖 곳을 다니지만 타이어는 갈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해리슨의 집을 한바퀴 둘러 본다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해리슨의 집 지하실은 탁구를 치거나 텔리비전을 보는 곳이 아니다. 창고문을 열면 압력통조림 제조기, 각종 통조림, 식당을 열어도 될만한 양의 식용유가 쌓여 있다. 웬 기름이냐고 묻자 해리슨은 “트럭운전사들이 파업하면 어쩌라구요?”라고 말했다. 2층 캐비넷에는 냉동 건조시킨 달걀과 청대콩, 옥수수 전분, 버터 가루, 치즈 가루, 가루 우유 등이 꽉 차 있다. 그녀가 바느질을 하는 방에는 밀가루, 쌀, 설탕 등이 담긴 양동이들이 가득하다.
식품 중에는 가루 형태인 것이 많았고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해리슨은 예를 들자면 매일 가루 우유를 먹는 등 정기적으로 비축된 물품들로 요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과일과 야채는 직접 키워 먹으면서 자신이 낳은 아이는 물론 입양한 아이까지 7명의 자녀를 키우고 많은 아이들을 위탁 양육한 해리슨에게 제일 불편한 것은 비용으로, 지난 2년동안 비상 식량과 의료용품을 마련하는데 약 3,000달러가 들었다.
비상 대비 지침
▲사람들은 모두 먹고 입고 잘 곳이 필요하지만 사는 곳에 따라 필요한 것도 달라지므로 비상 대비도 그에 따라 해야 한다.
▲식품과 물품들을 쌓아두려면 비용이 드는데 해리슨은 한꺼번에 많이 사려하지 말고 조금씩 하라고 권한다. 시장에 갈 때마다 예를 들어 복숭아 통조림이 세일이면 10달러어치를 사두는 식으로 몇 가지씩 더 사라는 것. 물도 다 마시고 난 2리터들이 소다병에 넣어 둘 수 있다.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 큰 포장은 피한다. 전기가 나가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 가능하면 개봉 이후 냉장이 필요한 것으로, 한두번에 다 먹어치울 만한 작은 포장을 고르도록 한다.
▲비상식량이라고 빵만 사둘 것이 아니라 푸딩이나 젤로 등 가족들의 기운을 돋울 간식도 준비한다. 아울러 책이나 보드게임 등 전기가 필요없는 오락거리, 비누, 치약, 샴푸, 화장지는 물론 애완동물이 있는 집이면 그 먹이도 필요하다.
<뉴욕타임스 특약-김은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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