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어느 한인단체의 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 일이다. 그 단체일로 한국을 비교적 자주 다녔다. 올림픽을 막 치르고 자신감이 팽배해 있던 한국에서 어쩌다 내가 미국 교포임이 알려 지면 늘 듣는 말이 있었다. “이제 미국은 지는 나라이고 한국은 뜨는 나라인데 왜 구태여 미국에서 사느냐”며 제법 측은해 하는 사람이 가끔 있었다.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하고 싶어도 나의 어눌한 우리말로 그들의 달변을 당할 수가 없어 그냥 돌아선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아마 그런 현상들이 IMF를 겪으며 좀 없어지고 한국인들이 겸손해지지 않았나 하고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미국경제나 정치에 문제가 발생할 때 마다 정말 이러다가 미국이 어떻게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캥기는 마음도 든다.
몇주전 월스트릿 저널에 난 기사를 보고 20여 년 전 한국에서의 기억이 연상되었다. 글을 제공한 이는 현재 세인트루이스 대학 역사학 교수인 토마스 매든 박사다. 나도 그동안 ‘미국의 종말’을 예고하는 여러 책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나름대로 관심을 보이던 터였다.
저자는 최근에 출판된 종말을 예고한 세권의 책을 비교하며 글을 전개한다. 소개한 책은 패트릭 부캐넌, 차머스 존슨과 내오미 월프의 책들인데 제목도 흥미롭다. ‘이데올로기와 욕심이 미국을 파멸로 이끈다’ ‘미합중국의 마지막 날’ 그리고 ‘젊은 애국자들에게 보내는 미국의 마지막 날’ 등이다.
매든 교수는 최근 출판된 이들 세 책을 로마 전성기에 활동했던 역사학자 겸 정치도 했던 세 사람과 비교한다. 이들 세 사람은 서구역사 특히 로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폴리비우스, 쌀러스트, 그리고 리비 이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로마의 멸망을 예고했다고 한다.
기원 3세기경 이후부터는 군인들이 집권하며 전 세계에 엄청난 제국을 이룩한 로마가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지금으로 치면 로마 제국에 속한 나라들은 전 유럽, 아프리카 일부 그리고 아시아도 어느 정도 포함돼 있다. 현재 나라들을 열거 한다면, 독일,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 50여 나라가 이 제국에 속해 있었다.
나라가 기울기 시작하며 군 출신 지도자들은 그들의 실책을 글로 올리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업적을 칭송하는 것만 발표하게 했다. 그런 상태에서 1000여년을 버티어 가다가 14세기에 동 로마제국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었다.
인류 역사상 지금 미국처럼 부를 누리고 인간의 기본법이 보장된 사회는 찾아볼 수가 없다. 신문에 기고한 매든 교수는 지금 미국을 로마에 비교하더라도 정부의 시책을 비난하는 것이 모든 일이 잘 될 때라고 한다. 모든 것이 잘되면 지루함을 벗어나려고 작가나 당대를 대표하는 지성인들이 극단적인 비난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작 칭송을 할 때가 망하기 시작하는 때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아직 칭송의 소리가 없으니 그의 말대로 걱정할 사태는 아니며 앞으로 1,000년은 로마처럼 버티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증권시장이 매일 하락하고 휘발류 값이 급등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때문에 주택시장이 말이 아니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어도 미국은 견딜 만하다고 한다.
좀 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자세히 읽어 보면 이 역사학자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역사를 거울삼아 오늘을 열심이 살 때 1000여년의 앞날도 설계할 수가 있다. 그 다음에 오는 역사학자도 로마제국과 미국의 예를 들며 이야기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우리는 배우고,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보다.
이종혁
이스트베이
캘스테이트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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