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방안으로 ‘메디컬 홈’주목
의사와 환자가 긴밀하게 의사소통
진료비 인상 통해 의료비 절감 기대
천정부지로 치솟는 의료비용을 줄이고 엉망으로 뒤엉킨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재정비할 길은 없을까? 일부 보험사와 정부 기관들이 새로운 방안을 시험 중이다. 전국적으로 실험 중인 이 시범 프로젝트는 의사들에게 진료비를 더 지불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의료비용을 줄이자는 것. 환자가 처음 의사를 찾았을 때 확실하게 진료함으로써 병을 키우지 말자는 아이디어이다.
의료비용을 줄이기 위해 진료비를 더 지불한다 - 언뜻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 방안은 전국의 많은 보험사와 연방·주정부가 진지하게 고려 중인 의료개선안이다.
가정의나 내과의사, 소아과 의사들에게 진료비를 더 넉넉히 지불함으로써 이들 의사가 시간에 쫓기지 않고 환자를 좀 더 정성스럽게 세심하게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차후에 발생할 불필요한 검사, 비싼 전문의 방문, 종합병원 입원 등 사전에 예방한다면 의료비 절감 효과가 상당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이다.
현재 메디케어와 일반 보험사는 환자가 주치의를 방문할 때마다 평균 60달러를 지불한다. 이후 환자가 전화나 이메일로 상담하는 데 대해서는 거의 지불하지 않는다. 많은 의료정책 전문가들은 의료수가가 이렇게 낮으면 의사들이 각 환자에 대해 몇 분 이상을 할애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는 60세 남성 로버트 윌리엄슨은 이런 수박 겉핥기식 진료의 대표적 피해자이다. 수년전 그가 병원을 찾았을 때 담당 의사는 너무 서둘러 진료를 끝내느라 그에게서 위험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얼마 후 윌리엄슨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렇게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고도 병을 제때 발견하지 못하거나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병이 악화, 개인적, 재정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는 케이스는 매년 수없이 발생한다. 윌리엄슨의 경우 회사 보험사는 병원비로 3만 달러를 지불했다. 그러고도 윌리엄슨은 필라델피아 개스 사의 고객 서비스 직원으로 하던 일을 더 이상 계속 할 수가 없게 되어 그만 두어 소셜 시큐리티 장애자 수당으로 살고 있다. 매달 1,900달러인 그 수당은 전적으로 납세자 부담이다.
윌리엄슨의 새 의사인 내과 의사, 리처드 바론은 필라델피아 의료개선 프로그램에 참가 중인 100여 의사 중의 한명이다. 그 덕분에 윌리엄슨은 수시로 맥박이나 당뇨수치를 이메일이나 전화로 의사에게 알리고 도움이 필요한 그 순간 의사로부터 지시를 받을 수가 있다.
필라델피아 의료개선 시범 프로그램은 필라델피아 시정부와 대형 보험사들이 손을 잡고 실시하고 있다. 바론의 경우 매 환자를 볼 때마다 받는 진료비는 64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를 포함, 의사 5명으로 구성된 그의 메디컬 그룹은 정규 진료비 외에 매년 20만-30만 달러를 추가로 지급받는다. 이 그룹에 속한 8,400명 환자들을 보다 잘 보살피라는 조건이다.
보험사가 이와 유사한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곳은 최소한 6개 주. 수천명 의사와 거의 200만명의 환자들이 관련된 실험이다. 이외에도 많은 주들이 고용주들, 그리고 의료정책 전문가들에게 유사 프로젝트를 강력히 추천하고 있다.
정부 의료보험프로그램인 메디케이드와 메디케어 역시 이 아이디어를 연구 중이다. 노스 캐롤라이너에서는 이미 메디케어 프로그램에 이 아이디어를 도입, 지난 2006년 1억6,200만달러의 의료비 지출을 덜 수 있었다. 주정부 예산 11%의 절약을 의미한다.
이 시험 프로젝트에 참가하려면 병원 측은 직원 수를 늘려야 한다.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과정, 치료 후의 상태 등을 면밀히 살피고 매모그램이나 장 검사 등 예방용 테스트들을 제때 받을 수 있도록 미리미리 알려주는 등의 서비스를 하려면 추가 인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윌리엄슨과 같은 만성 중증질환자들은 의사의 도움을 수시로 받을 수 있다. 담당 의사들은 환자의 전화를 직접 받고 이메일 질문에 즉시 답을 보내며,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환자들은 병원에 연락을 취하는 즉시 의사를 찾아가 만날 수가 있다.
의사, 직원, 환자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건강을 돌보는 일종의 ‘건강관리 가족’, ‘메디컬 홈’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이런 ‘메디컬 홈’이 엉망이 된 미국의 의료 시스템을 비효율의 수렁에서부터 건져낼 수 있을 지를 실험해 보려는 것이 보건당국의 의도이다. 메디케어 역시 메디컬 홈 시험 프로젝트를 내년에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8개주에서 주치의들은 만성질환으로 등록된 환자 1인당 매달 30-40달러를 추가로 지불받게 된다.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메디컬 홈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는 미시건의 경우 자동차 업계가 적극 후원하고 있다. 미시건에서 470만 회원을 가진 블루크로스 블루 실드 보험사는 시범 프로젝트 지원을 위해 올해 3,000만 달러를 배정했다. 참가하는 주치의는 4,900명 정도.
필라델피아 시범 프로젝트는 그 지역의 3대 보험사인 인디펜던스 블루 크로스, 애트나, 그리고 시그나가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지역 메디케이드도 동참, 앞으로 3년간 이 프로그램에 1,300만달러가 투자될 예정이다.
이 모두는 발병 초기에 진료를 잘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때 의료비 절감효과를 가져온다는 기본적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메디컬 홈 시범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는 대체로 높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결과에 회의적인 전문가들도 있다. 유펜의 워튼 스쿨의 보건정책 경제전문가인 마크 폴리는 “메디컬 홈이 기대대로 그런 훌륭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구체적 증거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필라델피아 프로젝트를 지원 중인 애트나와 시그나의 중역들조차 너무 장밋빛 전망에는 몸을 사리는 분위기이다. 투자한 데 대한 직접적 보상이 적정한 시간 내에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의대 졸업생들 가정의 기피
전문의에 비해 수입 적어
가정의나 일반 내과의 등 주치의가 환자들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는 것은 수적 감소와도 상관이 있다.
지난해 의과대학 졸업생 중 가정의를 선택한 숫자는 겨우 7%였다. 미국 가정의학회에 의하면 가정의의 중간 연소득은 15만 달러에 불과하다. 심장외과의사의 중간 연소득인 43만3,000달러, 위장 전문의의 소득인 40만6,000달러에 비하면 한참 낮은 액수이다.
가장 최근 통계가 실시된 2006년 기준으로 하면 미전국의 가정의, 일반내과의 등 주치의는 25만1,000명이 약간 넘는다. 반면 전문의 숫자는 거의 47만2,000명에 달한다.
“일반 주치의를 키워내는 파이프라인이 수년 째 말라가고 있다”고 존스합킨스 대의 보건정책 전문가인 바바라 스타필드 박사는 말한다. 미국 기준으로는 인구 1,000-2,000명마다 주치의가 한명씩 있어야 하는 데 그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지역이 많다는 것이다.
메디컬 홈 프로그램은 가정의의 숫자를 늘리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뉴욕타임스 - 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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