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오페라의 나라다. 베니스의 곤돌라 사공도 웬만한 오페라 아리아는 척척이다. 그에게 “이탈리아 사람들이 최고로 알아주는 오페라는 어느 것이냐”고 물으니까 “노르마”(Norma)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 후 현지에서 성악 공부하고 있는 한국 유학생에게 똑같은 질문을 해봤더니 그도 “오페라 중의 오페라는 노르마”라고 대답한다.
오페라 노르마는 벨리니의 작품이다. 이탈리아가 벨리니와 노르마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가는 유로화가 통화로 쓰이기 이전 5,000리라 지폐 전면에 벨리니 얼굴을, 그리고 뒷면에는 오페라 노르마의 장면을 새겨 넣은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벨리니는 베르디에 가장 영향을 끼친 작곡가다.
오페라 노르마는 갈리아 지방 드루드교의 여사제 노르마의 위선적인 이중생활과 로마 장군과의 삼각관계를 그린 내용으로 신앙, 애정, 배신, 복수, 그리고 화형 등을 테마로 엮은 극적인 작품이다. 마지막에 노르마가 불속으로 뛰어들어 죽는 장면은 관중을 압도한다. 노르마 역은 노래 잘 부르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연기와 드라마틱한 여사제의 감정을 표현해야 오페라가 살아나기 때문에 배역을 소화하기 힘들어 쉽사리 공연되지 않는다.
이 노르마 역을 천부적인 재질로 소화해낸 오페라 가수가 마리아 칼라스다. 지난해 그의 사망 30주년을 맞으면서 세계의 오페라 계는 마리아 칼라스를 다시 평가하고 있다. 당시 그리스 출신인 칼라스와 이탈리아 가수인 테발디의 대결은 세기적인 것이었는데 이탈리아 오페라 계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테발디를 더 높이 평가했었다.
그러나 날이 지날수록 노르마 역을 맡을 소프라노가 드물다는 것이 증명되어 칼라스의 신화가 요즘 다시 부각되고 있다. 칼라스 이후 노르마 역을 소화해 낸 소프라노는 스페인의 몽세라 카바예, 오스트랄리아의 존 서덜랜드가 있으나 연기와 목소리의 혼연일치가 칼라스를 능가 하지는 못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칼라스는 평생 동안 89회의 노르마 공연을 가졌다. ‘노르마’ 하면 ‘칼라스’다. 그의 뛰어난 노르마 역의 재질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자서전에 따르면 칼라스의 어머니는 그리스가 독일군 점령 하에 있을 때 여동생은 독일군에게 겁탈 당할까 봐 보호하면서 칼라스에게는 독일군과 데이트하여 식량을 얻어 올 것을 강요한 것으로 되어 있다. 칼라스는 이를 곧 몸을 팔라는 소리로 받아들여 격분했으며 동생만 귀여워 한 어머니를 평생 용서하지 않았다. 칼라스의 장례식에는 가족들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페라 가수로 성공했을 때 어머니와 여동생이 먹고 살기 어려워 칼라스를 찾아와 100달러만 도와달라고 통사정했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자신이 죽을 때도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유산을 전부 가정부에게 남겨 주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차별이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가져오는지를 칼라스가 보여주고 있다.
칼라스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오나시스와의 결혼을 평생의 꿈으로 삼았는데 오나시스가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하자 심한 배신감을 느껴 분노 속에서 나날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페라 노르마도 배반한 애인에게 시종 분노하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잠재적인 여러 가지의 분노들이 그의 노르마 역을 뛰어나게 소화해 내는 에너지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칼라스는 분노를 예술화 시킨 음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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