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여름 노구교사건으로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남진한다. 천진, 북경, 상해가 잇달아 함락된다. 다음 목표는 당시 국민당 정부의 수도 남경이다.
그해 12월13일 일본군은 마침내 남경 시내로 진입했다. 이후 6주간 엄청난 만행이 저질러진다. 최소한 30만 정도의 중국인들이 일본군에 학살되는 것이다.
‘남경대학살’ 사건이다. 이 사건에 그런데 일본 교과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 사실에 중국은 분노해 반일시위의 격랑이 인다. 양국관계가 좋지 않을 때마다 되풀이 되는 현상이다.
3년 전이었나. 일본의 역사 왜곡에 중국이 또 다시 들끓고 있을 때였다. 미국의 한 논객이 조용히 한 가지 질문을 제기했다. ‘일본만 역사를 왜곡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는 중국도 마찬가지라는 논리였다. 그리고 어쩌면 역사 왜곡의 도가 중국이 더 심할지도 모른다는 지적이었다.
그 중국식 역사 왜곡의 압권은 각종 역사공정으로 불리는 방대한 역사개작 작업이다. 변방 소수민족에 대한 새로운 역사 해석을 통해 독립국가로서의 역사를 말소한다. 그리고는 중국의 변방사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그 작업은 이미 80년대부터 시작돼 왔다. 그 중의 하나가 1986년 등소평의 직접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서남공정(西南工程)이다.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중국 장학연구 중심이 주도해 온 이 서남공정은 원과 청나라 시대를 제외하고 독립국가 형태를 유지해 온 티베트의 역사를 말끔히 지우는 작업이었다. 한 마디로 티베트는 중국의 변방 정부였다는 게 서남공정의 골자다,
이 역사 말살작업에 티베트인의 저항이 따랐다. 1989년 천안문 사태가 발생한 해에 티베트인들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했던 것이다. 무자비한 진압이 뒤따랐다. 등소평의 지시 하에 후진타오 당시 티베트 서기는 철모를 쓰고 선두에서 유혈진압을 지휘했던 것.
그리고 20년이다. 티베트에서 또 한 차례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티베트인의 독립 요구에 중국당국이 강력한 무력진압에 나서 대학살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말해주나. 한 세대에 걸친 개혁·개방, 그리고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본질은 사실에 있어 하나도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이다. 권위주의 공산체제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 것이다.
또 하나가 있다. 이번 사태는 특히 한국인들에게 상당히 심각한 시사점을 던지고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고구려를, 더 나아가 고조선 자체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개작하려는 게 중국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