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관련돼 BBK 주가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경준씨가 검찰에서 자백을 조건으로 감형 회유를 받았다는 발설로 검찰을 비난하는 부정적 여론이 무성하다.
최근 이에 관련된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것은 검찰이 아니라 김경준씨 자신이 검찰에 이런 흥정을 제시했다고 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로 확인되면 김경준씨 역시 부정적인 여론으로 비난받는 것이 지금의 한국 여론이고 한국인들의 일반적 의식인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 일고 있는 이런 부정적 여론은 ‘자백을 전제로 한 형량의 흥정’이 제도화 되어있지 않은 한국의 형사 절차 때문에 생긴 오해라 생각된다. 이것은 미국의 형사제도를 이해한다면 전혀 비난받을 제의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미국의 형사법원에서는 이런 흥정이 ‘plea bargaining’이라 해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형사절차상의 기본이 되는 제도이다.
피고인의 혐의가 의심의 여지없는 증거에 의해서 입증되어야 유죄로 한다는 원칙은 한국이나 미국 할 것 없이 공통의 민주적 법정신임에 틀림없다. 그렇더라도 유죄를 입증해야 할 의무를 진 검찰은 피고인이 혐의사실을 자백하고 시인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복잡한 증거조사를 해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피고인이 입건된 사건의 어느 범위를 자백하게 되면 형량을 경감해 준다는 조건으로 검찰이 협상을 하게 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널리 쓰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협상 때문에 검찰의 업무량을 대량 줄여줄 수 있고 법원에서도 사건의 재판을 속결로 끝낼 수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형사법원에서의 경험에 의하면 입건된 사건의 90% 이상이 이런 절차로 끝을 맺는다.
예를 들자면 얼마 전 한 한국인 부인이 누구를 칼로 위협하고 협박했다는 혐의로 입건된 사건이 있었다. 이 부인은 협박죄에 무기소지 혐의 할 것 없이 많은 법 위반혐의로 체포 입건되었다. 검찰이 초동 수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유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아주 희박한 것이어서 증거조사를 거쳐서 정식 재판절차에 갈 것 없이 협상으로 재판을 끝내자며 ACD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말하자면 형량 협상제도에 따른 협상의 제안이다. ACD라는 것은 사건의 재판을 6개월 동안 보류하고 있다가 그동안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재판 없이 사건을 기각하겠다는 것이어서 말하자면 기한부 무죄 조치라 할 수 있는 우리 형법상의 기소유예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이 부인은 이 사건이 완전히 조작된 것이어서 고발인에 대한 대응조치가 필요하므로 6개월이란 시간을 기다릴 수 없다며 이 ACD 조건을 거절하고 재판을 요구하게 되었고, 증인 심문 등 복잡한 정식재판 절차를 거쳐서 결국 무죄로 판결을 받아내었다. 이 부인도 이를 받아들였다면 간단히 재판을 끝낼 수도 있었다.
위에서 말한 김경준씨도 미국에 사는 사람이다 보니 이런 편리한 제도를 알고 있을 것이고, 검찰이나 본인의 편리를 위해서 이런 제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검찰이나 김경준씨 어느 쪽이나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한국에 이런 제도가 없기 때문에 형사사건으로 입건되어 오는 많은 한국인들이 입건되는 첫 날부터 판사 앞에 서게 되면 모든 사건에서 검찰과 공방하는 재판이 시작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자기의 무고함을 주장하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무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막무가내로 자기 주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많다.
처음 법원에서 사건이 다뤄지는 날은 보석금 책정 여부와 다음 재판 날을 정하는 것이지 사건의 내용을 다루는 재판 절차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한국인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정식으로 사건이 입건된 다음 이 날 이후에 변호사와 검찰 사이에 위에 말한 협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박중돈
법률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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