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인문대에서 이번 학기에 1, 2 학년을 마치고 전공과로 진입하는 일부 학생들의 학과별 지원 현황이 발표되었다. 어학 계열에서는 81명 중 70명(86.4%)이 취직이 잘 된다는국문과, 중문과, 영문과에 몰렸고 불문, 독문, 노문, 서문, 언어학과에는 도합 11명만 지원했다. 독문, 노문, 언어학과에는 지원자가 각 1 명뿐이었다.
사학, 철학 계열에서도 국사과에 20명이 온 반면, 종교학과에는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았다. 물론 비인기학과들은 ‘전공예약자’를 1학년부터 뽑고 노문과와 중문과에 러시아 지역학, 중국 지역학 등의 연합 전공을 도입하는 등 학교측에서 안간힘을 써서 인문학과들이 폐과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취직이 안 되는’ 학과들뿐만 아니라, 인문학 계열 학생들이 거의 전공 공부보다는 취직 시험 공부나 고시 공부를 하는 분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학부 때에 전공 공부를 잘 해서 기대되던 학생들도 대학원이나 유학을 가서는 다른 전공으로 바꾸어 공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이 모두 순수 인문학 공부는 길고 어렵고 장래의 진로는 보장이 안 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인문학 계열로 박사를 하려면 다른 전공들보다 월등히 긴 10년이 걸린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어느 나라에서 박사를 해도 대학 교수 자리는 워낙 없어서 대학 전임으로 취직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박사 학위를 가지고도 만년 시간 강사로 지내며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우수 인력들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래도 한국에서 1970년대 이후 많이 생긴 제 2 외국어 전공학과들 덕분에 세계화에 공헌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생겨 세계 각국어를 직접 구사하고 번역할 수 있고 해당 국가들과 교류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 이 학과들이 다시 폐과 되면서 어렵게 생긴 이 지식층이 없어지려 하고 있다. 그러므로 학생이 적다고 무작정 학과를 없애는 것보다 한 명이라도 전공 학생을 끝까지 키울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대개 인문학을 끝까지 공부하는 학생은 그 분야가 적성에 맞고 물질에 욕심이 없으며 학문을 사랑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을 참을 각오가 되어 있다. 그들은 책을 많이 사서 보아야 하지만 자연과학 분야처럼 다른 실습에 필요한 학문적 비용은 들지 않는다.
인문학은 우선 어학 실력의 기초를 가지고 자료를 많이 읽어야 하므로 긴 시간 동안에 여러 언어와 학문의 토대를 쌓아야 하고 인간과 관계되는 사회, 역사, 종교, 예술등 모든 분야에 걸친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과학도 마찬가지이지만 기초 학문의 바탕이 없으면 응용 학문의 뿌리가 없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 전체 분야를 키우고 그 인적 자원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 관건이다. 당장 밥벌이가 안 된다고 하여 완전히 무시하고 없애버릴 분야가 아닌 것이다.
지금 죽어가고 있는 인문학의 명맥을 유지하려면 우선 급한 대로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많이 주고 교수나 연구자들에게는 연구비를 많이 지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도서 구입비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학 도서관서부터 각 분야에서 새로 출간되는 책들을 모두 빨리 장서로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추세가 계속되어 외국어 전공자들과 국학 전공자들이 모두 없어지고 인류의 문화 유산인 책과 자료를 연구할 인적 자원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다. 정부와 대학들도 국가의 장래를 보고 인문학의 부활을 위해 모든 방법을 다해 힘을 쓸 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문학자들이 부단한 천직 의식을 가지고 어려움 속에서도 연구와 학술 활동에 정진할 때이다.
이연행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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