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힐러리의 이름은 힐러리 로드햄이다. 힐러리는 빌 클린턴과 1975년 결혼한 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성을 계속 사용했다. 이 때문에 시어머니와 관계가 한때 냉랭해진 적이 있었다. 힐러리가 남편의 성을 따라 ‘힐러리 클린턴’으로 이름을 고친 것은 1979년 남편이 아칸소 주지사에 출마했을 때였다. 남편의 당선을 도우려면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힐러리를 “미국 역사상 가장 양극적이며 개성이 강한 여성”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이는 아마도 그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인 것 같다. 힐러리 자서전에 의하면 어머니 도로시 여사는 어린 시절 부모들이 돌보지 않아 거의 고아에 가까운 상태에서 자립했으며 처녀 시절 블라우스가 하나밖에 없어 외출할 때마다 빨아서 말려 입고 나갈 정도로 궁핍했다고 한다. 그래서 힐러리는 여성의 권익과 불우아동 학대 방지법 제정에 큰 발자취를 남겼으며 주부들과 가난한 노동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선거운동 경력도 화려해 “선거에는 귀신”이란 말을 들을 정도다. 골드워터, 록펠러 대통령 지명전에서 운동원으로 활약했고 지미 카터의 인디애나주 담당 선거전 참모였다, 무엇보다 세 번씩이나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된 남편 빌 클린턴의 1급 선거참모였으며 두 번에 걸친 대통령 선거 때는 사실상 선거본부장 역할을 했다.
클린턴의 선거운동은 ‘2인3각’이었다. 자신의 힘으로 당선된 것이 아니라 항상 힐러리의 머리를 빌렸고 당선 후에도 많은 권한을 힐러리에게 맡겼다. 힐러리가 주관한 보험개혁안이 대표적인 예다.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당면문제를 의논할 만큼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다. 그래서 공화당은 클린턴의 대통령 당선이 힐러리와의 공동작품이라 하여 CO-PRESIDENCY라고 평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은 선거전마다 유권자들에게 ‘한 개의 값으로 두 개를’이라는 표어를 내걸어 힐러리가 자신의 정치적인 보좌관임을 인정했으며 이번 오바마와의 대전에서도 빌 클린턴은 찬조연설에서 ‘한 개의 값으로 두 개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지금 힐러리 클린턴이 고전하고 있다. 미국 역사상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에 많은 사람이 찬성하면서도 빌 클린턴이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과거 이들의 집권이 두 사람이 밀어주고 끌어주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힐러리의 당선은 ‘클린턴 팀’의 재탄생을 의미하며 2인3각 정치의 CO-PRESIDENCY라는 것이다.
빌 클린턴은 대통령 재임 때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퍼스트레이디의 극성과 르윈스키 스캔들 등으로 인기를 잃어 총선거에서 하원의원 53석, 상원의원 7석을 공화당에 빼앗기는 아픔을 겪었다. 경제에서는 성공하고 정치에서는 실패한 대통령이다.
힐러리의 최대 핸디캡은 ‘클린턴’이라는 라스트 네임이다. ‘힐러리 로드햄’이 여성 대통령으로 탄생한다면 몰라도 ‘힐러리 클린턴’이 백악관 주인이 되는 것은 재고해 볼 문제라고 많은 유권자들이 생각하고 있다. 변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힐러리가 겪고 있는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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