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물의 뇌관을 제거한다는 것이 얼마나 진땀나는 일인가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 BBK는 이명박 후보에게 있어 분명 지뢰밭이었다. 그런데 검찰이 야당후보의 지뢰밭 뇌관을 모두 빼놓는 상상을 초월하는 용감함을 보였다. 오죽 감격했으면 검찰청 앞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이 “검찰 만세”를 외쳤을까.
희한한 장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검찰발표가 있은 후 대통합민주신당원들이 명동거리에서 데모를 했는데 현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한명숙씨가 ‘퇴장’이라는 빨간 카드를 들고 검찰을 성토했다. 노무현 정부의 검찰인데 여당의원들이 “정치검찰 퇴장하라”고 외치고 있으니 어색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다.
검찰은 원래 권력에 민감한 법이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대통령후보는 기소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검찰총장이 지시해도 밑에 있는 검사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검찰총장도 임기가 끝나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별로 눈치를 보지 않는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이명박 후보의 선두 달리기가 너무나 오래 계속되는 바람에 야당후보가 여당후보처럼 보이고 범여 세력이 야당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명박 대세론이 다시 굳어지자 선거판이 이명박 대 반이명박으로 변해 버린 데다 여기에 보수 세력인 이회창 후보까지 가세하는 형편이다. 누가 여당이고 누가 야당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대통령선거의 윤곽이 이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범여권 사람들조차 이명박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선거풍토에는 투표일이 가까워 오면 이상한 기류가 형성된다. 유권자의 30%는 죽어도 이명박이나 이회창 후보를 찍지 않는 진보 및 좌파세력이다. 또 다른 30%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정동영 후보를 찍지 않는 보수 세력이다. 40%는 양쪽 눈치를 살피는 부동표다.
따라서 범여권이 하나로 똘똘 뭉치고 여기에 민주개혁세력 위기론을 내건다면, 그리고 부동표를 열심히 흡수한다면 승리의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DJ의 신념이요 정동영 후보의 계산이다. 촛불데모를 매일 하겠다고 야단법석인 것도 이 때문이다. 지지층의 허탈감을 분노폭발로 유도하여 표를 결집시켜 보자는 작전이다. 물론 보수 세력인 이명박과 이회창 후보 간의 치열한 경쟁을 전제로 한 가상이다.
이회창 후보의 입장은 무엇일까. 그의 진짜 속마음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아니라 열성적인 보수 세력을 한데 모아 새로운 정당을 만든 후 국회에 진출하려는 것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다. 박사모는 이미 그의 옆에 가있지 않은가.
그러나 만약의 경우 보수표가 찢어져 정권교체에 실패한다면? 보수파에게 그는 역사의 죄인이 된다. 이회창 후보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처음엔 그는 이명박 유고시에 대비해 나온 스페어 후보였다. 정권교체가 위험해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의 무혐의가 검찰에 의해 밝혀진 지금은 그 자신이 오히려 정권교체의 장애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1,2등을 그의 희망대로 보수 세력이 차지하면 몰라도 범여 세력이 결집하여 이변이 일어나는 날엔 그뿐만 아니라 박근혜의 정치생명도 벼랑에 서게 된다. 이회창 후보가 끝까지 가느냐 아니면 이명박 후보와 극적인 타협을 이루어 중도하차 하느냐가 이번 대선의 제2막이다.
<서울에서>
이철 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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