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 년 동안 한국의 방송문화에도 큰 변화가 온 것 같다. 매일 즐겨보던 프로그램들은 미국에서 볼 기회가 없어 최근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재미 있는지, 누가 유명해졌는지 잘 알 수 없었고, 다만 인터넷을 통해 간헐적으로 이런 저런 정보만을 얻는 정도였다.
그러던 중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오락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유치하다는 아내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재미에 푹 빠져서 매주 그 프로그램이 방영 되기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그러던 중 예전 프로그램들과 비교할 때 한가지 새로운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송이 예전보다 형식성에 있어 훨씬 자유로워지고 시청자와의 접촉이 인터넷을 통해 시간적으로 보다 가까워 진 점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방송의 흐름은 시청자들에 반응하면서 더욱 빨라지고 그 포맷이 다양해진 듯 하다. 바로 이것을 ‘버라이어티 쇼’의 특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버라이어티 쇼’라고 하는 장르의 프로그램들이 이전에도 물론 있었지만 그 영역이 주말의 몇몇 프로그램에 특정된 것이 아니고 이제는 거의 모든 주요 프로그램들과 방송시간대를 장악한 듯 하다.
어찌 보면 신선하면서도 정신없을 정도로 산만하기도 하고, 또 출연 연예인들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담은 것 같은 그런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끄는 것은 바로 요즘의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사는 사회도 ‘버라이어티 쇼’이다. 내부적으로는 가족, 건강, 부, 성공 등이, 또한 외부적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매 초 단위로 우리에게 정보를 건네 주고 이를 처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MC가 되어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정보를 잘 맺고 끊어서 쇼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를 잘 못할 경우 엉망진창이 되기 십상이다.
변하지 않는 가치관을 가진다는 것은 스스로의 명확한 잣대를 가지고 있다는 뜻에서 바람직할 수 있지만 자칫 스테레오 타입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가 필요하기도 하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이 보여 주는 유연성과 소통이 우리의 의식과 판단에도 어느 정도 뒷받침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라크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국의 오락프로그램을 바라보는 것과는 같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보다 유연한 시각을 필요로 하는 사회 문화적 이슈들에 대해서도 시각이 매우 편협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요즘 삼성의 비자금 문제, 대선후보들 간의 무차별적 공격, 부정 입시 등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문제들이 계속하여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뉴스를 받아들이고 분석하는 이곳의 한인들 입장에서는 이런 뉴스들을 수용하고 소화해 자기 나름의 논리와 입장을 갖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현대사회에서는 무수히 교차되는 정보를 잘 거르고 고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과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안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후보의 BBK건에 대한 시각도 갈리고,이회창 후보의 출마에도 다양한 시각이 표출되고 있다. 결국 우리 자신들의 시각과 입장은 국가기관이나 언론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매체들을 통해 접하는 무수한 정보들을 선별하고 가공해 각자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수동적인 입장은 시청자에 머무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각자가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MC라는 능동적인 자세가 바람직 하다고 생각한다.
김유정
밥무법인 ‘비전’ LA지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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