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은 그럴 듯 했는데 본편 상영이 실망을 준 케이스가 김경준씨 가족들의 기자회견이다. 어제부터 서울의 TV 톱뉴스는 온통 에리카 김의 폭탄선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는데 에리카 김 아닌 부인으로 회견 당사자가 바뀌는 바람에 뉴스가 김이 빠져 버렸고 이명박후보의 위기론이 주춤해지는 효과를 낳았다.
통합신당이나 이회창 캠프 모두 김경준 사건을 이번 선거의 한방으로 은근히 기대해온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정동영 후보는 “김경준 사건이 발표되는 이번 주에 우리의 운명이 걸려있다”고까지 말할 정도다. 김경준 정국이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을 좌우하고 이에 따라 범여권 단일화 작업도 좌우되기 때문이다.
김경준씨 부인이 이중 계약서가 있다고 밝혔지만 이명박 후보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에는 타이밍이 좀 늦은 것 같다. 후보 등록마감이 이제 닷새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이중계약서가 있으면 이명박 후보의 사인이 사실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본인을 소환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검찰이 이 후보를 소환하기가 어려울뿐더러 소환되어도 변호사를 대신 보내기 때문에 수사가 벽에 부딪치게 마련이다.
등록 후에는 검찰이 후보를 기소하기가 매우 곤란해진다. 등록한 후보를 검찰이 잘못 건드렸다가는 지뢰를 밟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97년 대선 때 DJ가 수백개의 차명계좌를 갖고 있다는 혐의가 불거져 비자금 수사가 기소 문턱까지 갔으나 대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이 수사 중지를 발표한 예가 있다.
더구나 현재의 검찰총장이 며칠 있으면 퇴진하는 마당에 인심 잃는 결단을 내릴까. 게다가 신임 검찰총장은 삼성 뇌물사건 명단에 올라있어 한나라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삼성사건과 유관할 경우 국회가 인준청문회를 재개한다는 단서가 붙어있다. 검찰수사는 항상 겉으로는 엄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정치적인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후보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 특히 자녀의 위장취업에 대해서는 “돈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느냐”면서 불쾌해 한다. 대통령감으로는 인격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타 후보의 두배인 40%선에 머물러 있다. 왜 그럴까.
보이지 않는 강철 벽이 ‘이명박’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벽은 정권교체 희망이라는 시대의 흐름이다. 여당이 이명박을 이기려면 이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헛발질하는 효과에 불과할 것이다.
사람들이 지금 지지하는 것은 이명박 후보가 아니다. “우리는 이명박을 찍는 게 아닙니다. 정권교체에 찍는 겁니다.” 이것이 이명박 지지자들의 변이다. 아슬아슬 하지만 이명박 후보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명박”이라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김대업 학습효과”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2의 김대업 사건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자세다. 거의 피해의식에 가까울 정도다. 한나라당이 김경준을 ‘사기꾼’이라고 강하게 표현하는 것도 유권자들에게 김대업을 상기시키기 위한 선거 전략이다. 김대업 학습효과가 먹혀 들어가는 것을 한나라당이 파악한 것 같다. 김대업 때문에 이명박 후보가 덕을 보고 있는 아이러니칼 현상을 품고 있는 것이 이번 선거의 또 다른 얼굴이다.
<서울에서>
이철 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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