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겪은 망신이다. 파리에서 니스로 가는 에어 프랑스를 탔는데 공항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뛰었고 검사대에서 윗저고리와 신발을 벗는 등 정신없이 수속을 서두른 후 겨우 탑승했다. 온 몸이 땀에 젖어 타자마자 맥주를 한잔 했더니 졸렸다. 한잠 자고 났더니 니스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 윗저고리가 안보였다. 돈이랑 여권이랑 몽땅 들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재킷을 벗지 않는데 좌우간 나는 재킷을 입지 않고 있었다. 좌석 위에 있는 보관함에 있겠지 하고 열어보니 거기에도 없다. 복도에 엎드려 의자 밑을 들여다보고 앞사람 좌석까지 들여다보았는 데도 없다. 어허, 이거 큰 일났네. 오늘밤 어디서 잔다?
승객들이 다 내리고 비행기 안에는 나만 남았다. 내릴 수가 없는 것이 돈 한푼 없고 크레딧카드도 없어 택시커녕 버스도 탈수 없는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어이가 없어 맥 놓고 앉아 있는데 기장이 다가왔다.
“왜 안 내리고 계시죠?”
“여권과 돈이 들어있는 재킷을 잃어버려 다시 파리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어디서 잃어 버렸는데요?”
“아마 파리공항에서 검색대 바구니에 그냥 벗어놓고 온 것 같아요”
“아, 그건 찾기 힘들겠는데… 돈이 들어 있으니 누가 돌려주겠어요?”
이때 승객들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끝낸 스튜어디스가 무슨 일인가 싶어 기장과 나에게 다가왔다. 기장이 그녀에게 내가 당한 일을 설명했더니 이 여자가 갑자기 손으로 입을 막으며 “손님 재킷 제가 캐비넷에 갖다 놓았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졸면서 재킷을 무릎 위에 놓고 있기에 그녀가 “보관해 드릴까요?”라고 나에게 물었더니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잠결이라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그럼 비행기가 도착했으면 손님에게 재킷을 돌려 주었어야지…”하며 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스튜어디스는 “저도 잊어 버렸어요. 엊그제 입사해서 경험이 부족해요” 라며 생글생글 웃는다. 기가 막혀 나도 웃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기장이나 스튜어디스 모두 “미안 합니다” 소리를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은 사실이다. 프랑스 사람들 좀 이상하네. 나는 한마디 꾸짖어주고 싶었으나 여권과 돈을 찾은 감격에 너무나 기분이 좋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나의 프랑스 여행은 니스사건(?) 이후 두 배로 즐거워졌고 모든 것에 만족하는 여행으로 변했다.
잃었던 것을 되찾았을 때의 기쁨 - 그것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새로운 가치의 발견이다.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부자라는 말의 뜻도 다시 새기게 되었고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길이 열린다는 교훈도 얻었다. 여행할 때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도 깨닫게 되었다.
중요한 물건은 한군데에만 집중 시키지 말고 분산 시킬 것, 비행장에서는 절대 뛰지 말 것, 여행할 때는 소액의 비상금을 백이나 트렁크 어디에 반드시 감추어 둘 것, 여권번호만은 외우든지 다른 수첩에 반드시 적어 놓을 것, 비상사태에 대비해 여행지의 아는 사람 전화번호나 대사관 아니면 한국식당 전화번호라도 꼭 적어 놓을 것 등을 마음에 새겨두고 있다.
망신당한 후 터득한 여행요령이다.
이 철 / 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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