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국의 어느 지방대학 총장이 모친상 때 들어온 조의금 전부를 대학 기금에 쓰라고 내놓았다는 기사가 신문에 난 적이 있었다. 대학 총장이면 조의금이 얼마 들어왔을까. 이 지방대학 총장이 내놓은 조의금은 7,000만원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이 수백억 비자금 때문에 말썽이 나 입건되자 법정에서 “결혼식 때 들어온 축의금으로 종자돈을 만들어 불린 것”이라고 진술했던 적이 있다. 최소한 5억은 들어오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어떤 국회의원 자제가 결혼했을 때 축의금이 1억 들어왔다고 보도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보통사람들의 결혼식에서 들어오는 축의금은 얼마나 될까. 기자가 서울에 갔을 때 친구들과 인척들로부터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보통 1,000만원 정도이고 부모가 직장이 있고 끗발이 좀 있으면 5,000만원 선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돈의 소유권이 자식에게 돌아가느냐, 부모에게 돌아가느냐다.
놀라운 것은 아버지가 가져간다는 사실이다. 축의금 소유권 때문에 말썽이 난 재판에서 법원이 아버지쪽 손을 들어주어 판례로 확정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들어온 축의금을 다시 자식에게 돌려주는 것이 관례다. 미주 한인들에게는 납득이 잘 안 되는 풍토다.
축의금 액수는 잘 모르는 사이면 3만원, 잘 알고 지내면 5만원, 친한 사이면 10만원이다. 대부분 장부를 만들어놓고 누구 결혼식 때 내가 얼마 냈고, 얼마 받았고 하는 식으로 깨알 같이 적어 놓는다. 나에게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가져온 사람에게 경조사가 있을 경우 내가 돈을 보내지 않았다가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낙인찍힌다.
서울 가서 친구들과 만나면 “경조사가 많아 미치겠다”는 소리를 으레 한 번씩 듣는다. 청첩장을 받고 반가워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통지서 받은 표정이고 결혼을 축하하는 얼굴은커녕 축의금 때문에 짐이 돼서 죽겠다는 소리를 한다. 받았으니 안갈 수는 없고 퇴직해서 돈은 없는데 사방에서 고지서는 날아오고. 특히 조의금을 게을리 하면 의리까지 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요즘 한인사회에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축의금·조의금 문화가 전염돼 이상한 풍토가 형성되고 있다. 축의금으로 100달러 내면 쩨쩨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체면 좀 세우려면 300달러다. 이민 와서 고생하는 신세에 축의금이나 조의금은 한국을 능가한다. 이민 초기(제2의 물결이 시작된 1970년대)에는 없던 풍토다. 이대로 가면 이민사회에서도 경조금 장부를 집집마다 마련해야 될 형편이다.
한국의 축의금·조의금 문화는 병든 문화다. 서로 추수를 돕는 품앗이 문화에서 시작된 것인데 지금은 곗돈처럼 되어 버렸다. 한국에서 장례식에 들어온 조의금을 둘러싸고 가족끼리 싸우고 의리 상하는 예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봤다. 조의금이 도움이 된 것이 아니라 독약 역할을 하고 있다. 고인에게도 폐가 되는 일이다.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잣대 재는 문화가 바로 한국의 축의금·조의금 문화다. 그래서 요즘 말 많은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축의금과 조의금을 받지 않는다. 결혼식은 가까운 사람들만 모이고 장례식은 조의금 없이도 누구나 다 참석하는 것이 미국식이다. 축의금·조의금 문화가 한인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적게 내고 적게 받는 경조사 문화를 연구해 보자.
이 철 / 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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