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르기 바란다. 국장은 원하지 않는다. 각료들은 나의 장례식에 올 필요가 없다. 나의 묘지는 딸 안느가 잠들어 있는 콜롱베의 마을 공동묘지로 해 달라. 그리고 묘비에는 샤를 드골, 1890년에 태어나서 몇 년에 죽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적어서는 안 된다”
유명한 드골의 유서 내용이다.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인물, 더구나 프랑스 현대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정치인이 자신의 죽음을 마무리 짓는 내용의 유언이었기 때문에 기자는 평소 드골의 묘지를 꼭 한번 보고 싶었다. 과연 드골이 마을의 공동묘지에 묻혀 있을까. 그가 알제리 반란 등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고향으로 돌아가 칩거한 콜롱베의 자택은 소문대로 보잘 것 없는 시골집일까.
얼마 전 프랑스를 통과하는 길에 드골의 묘지를 보기 위해 일부러 파리에 내려 완행열차를 타고 그의 고향에 갔다. 그의 묘지는 정말 마을 공동묘지 안에 있었다. 그리고 딸 안느와 부인 이본느 옆에 잠들어 있는 그의 비석에는 ‘샤를 드골, 1890~1970’이라고만 새겨져 있었다. 전직 대통령의 묘지 치고는 검소함을 넘어 약간 초라한 인상마저 들었다.
집도 마찬가지였다. 오래된 2층 집이었는데 마치 일제 강점기 서울에서 볼 수 있던 적산가옥을 연상케 했다. 다만 다른 것은 울창한 숲속에 있다는 것뿐이었다. 드골은 “권위는 신비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와의 접촉을 항상 꺼렸다. 그는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을 “공개된 포로수용소”라고 불렀다.
드골은 권위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가 보인 권위는 권력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카리스마적인 요소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권력을 쥔 사람은 힘 있으면 권위도 저절로 따라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권위의 본질은 말과 행동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매력이다. 권력과는 거리가 멀다. 선거를 잘 치르면 대통령은 될 수 있지만 대통령이라 해서 누구나 권위 있는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말과 행동이 깨끗해야 한다.
은퇴하는 대통령은 누구나 역사의 평가를 높이 받고 싶어 한다. 권위 있는 인물로 남고 싶은 것이 그의 소원이다. 그런데 태도를 보면 너무나 이율배반적이다. 은퇴 후 어떻게 하면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까, 어떻게 하면 자신이 정치적으로 보복 당하지 않을까 등을 생각한 나머지 무리수를 두게 되고 결국 이와 같은 무리수가 퇴임 직전 이미지 형성에 결정적인 상처를 입히게 된다. 은퇴하면 켕기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드골의 은퇴는 드골이 어떤 정치인인가를 보여주었다. 대통령 연금도 거부하고 대령 연금만을 받겠다고 고집했으며 자신이 속해 있던 당 간부들과도 접촉을 끊었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후 일체의 표창장이나 훈장도 거절했다.
오늘날 파리의 국제공항이 ‘샤를 드골 공항’으로 이름 지어지고 개선문 에투알 광장이 ‘드골 광장’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드골이라는 이름이 역사에서 얼마나 권위 있게 평가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드골은 권력을 쌓지 않고 권위를 쌓은 정치인이다. 그는 은퇴를 통해 다시 탄생했다. 마을 공동묘지에 묻히고 집 한 채만 달랑 남긴 정치인이지만 ‘골리즘’의 불은 프랑스에서 계속 타오르고 있다. 부시와 노무현 대통령이 역사에서 평가받는 대통령이 되려면 드골의 은퇴를 좀 연구해야 된다.
이 철 / 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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