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러 온 민간인을 설마하니 죽일까”하던 예측이 빗나가면서 아프카니스탄의 한국인 인질사태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또 한명이 살해되어 23명중 21명이 남았는데 남자가 5명, 여자가 16명이다.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남자부터 차례로 죽이겠다”는 탈레반의 협박이 엄포 아닌 사실로 나타나기 시작하자 이제는 남자 5명이 더 희생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탈레반의 발표를 허풍으로만 여길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한국정부와 아프간 정부의 발표가 믿을수 없는 형편이다. 지금까지 진행 되어온 협상과정을 살펴보면 한국정부는 완전히 엉터리 정보에 놀아난 느낌이다. 배형규 목사가 살해되는 바로 그 시간 정부 소식통은 “인질 8명이 석방돼 안전한 곳으로 이송됐다”고 까지 언급 했었으나 탈레반은 “인질석방 교섭이 실패했다. 모두 죽이겠다”고 말해 대조를 이루었는데 결과적으로 탈레반 발표가 사실화 되어 모든 언론이 오보를 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엊그제 심성민씨가 피살되는 시간에도 청와대 대변인은 “협상시한이 연기 됐다는 보고가 있다. 탈레반이 협상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발표 했으니 어이없을 뿐이다. 정보부재고 탈레반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 완전히 드러났다. 이는 아프간 정부 당국자들이 전하는 무책임한 정보에만 의지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국민의 인명을 해치는 행위가 다시 일어난다면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라는 정부의 발표도 무슨 소린지 아리송 하기만 하다. 마치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구출작전이나 무력을 사용 하겠다는 뉴앙스를 풍기는데 그건 최악의 사태의 마지막 카드다.
미국신문에서는 미국인의 인질사태를 보도하지 않거나 작게 취급한다. 인질범들에게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대통령 특사 까지 파견되고 언론이 연일 인질사태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바람에 탈레반이 “한국인 납치가 예상외의 효과를 가져 올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와 언론 모두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탈레반의 효과 극대화는 한국인의 추가 살해를 의미한다.
인질중에는 서경석(27.남), 서명화씨(여.29)처럼 남매가 붙잡혀 있는 케이스도 있다. 남자부터 죽이겠다는 탈레반의 위협이 행동으로 옮겨지자 아버지 서정배씨(57)가 눈물을 흘리며 한 말은 너무나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명화야, 경석아, 너희들이 살아올수 있다면 내가 죽어도 된다. 나는 살만큼 살았어. 젊은 너희들이 살아야지. 부디 살아서 돌아 오너라”
만약에 탈레반이 남은 남자인질 5명을 죽이거나 여자인질까지 죽이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건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무능을 규탄하는 소리가 높아질 것이고 선거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죽었다”는 원망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어 한미간의 관계에도 적지않은 후유증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인질사태는 이제 세계여론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세계여론이란 탈레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간 정부와 미국에 호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clee@koreatimes.com
이 철 / 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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