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를 담당하는 기자들은 경찰에게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때 경찰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문용어와 줄임말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면 ‘뭘 좀 아는’ 노련한 기자라는 인상을 줘 수월하게 취재를 할 수 있다. “나는 기자…”운운하며 자기소개를 하고 장황하게 사건경위를 설명을 했다가는 ‘신참내기’ 기자라는 인상을 주고 푸대접을 받을 수 있다.
경찰이 기자에게 사건을 설명할 때도 경찰내부에서 일반화된 전문용어를 많이 쓰기 때문에 한 번에 알아들어야 효과적인 취재를 할 수 있다. 경찰들이 ‘187’이라고 말하는 것은 살인을 뜻한다.
캘리포니아 형법에서 살인항목이 187조이기 때문이다. ADW가 국제기구 이름인지 알았다는 기자도 있었지만 ‘Assault with Deadly Weapon’의 줄임말로 살상무기를 이용한 폭력을 뜻한다. PIO는 ‘Public Information Officer’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경찰 공보관을 뜻한다. MAC은 ‘Major Assault Crime’의 줄임말로 폭력범 등을 다루는 강력반에 해당한다. ‘주비(juve)’라는 표현도 많이 쓰는데 미성년자인 Juvenile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얼마 전 경찰의 불법 택시 단속에 동반 취재를 갔었다. 루테넌트가 무전기로 “UC팀 작전 개시”라는 지시를 내려서 바로 이해를 못했는데 ‘Under Cover,’ 즉 함정단속을 하는 사복 경찰을 UC라고 불렀던 것이다. MISPER는 실종자인 missing person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CSI(Crime Scene Investigation)와 DOB(Date of Birth)은 일반적인 용어가 됐지만 경찰 전문용어가 일반화된 것이다.
전문분야일수록 내부에서만 통하는 전문용어나 줄임말을 많이 쓴다. 업무의 효율을 높인다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만 아는’ 전문용어를 사용하면서 내부 소속감과 전문성을 확인하려는 의도도 다분히 있다. 기자가 경찰들이 즐기는 전문용어를 써가며 취재를 하는 것도 ‘나도 좀 안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정보 하나라도 더 얻으려는 ‘얄팍한’ 생활의 지혜가 깔려있다. 그 얄팍함 뒤에는 기자가 경찰의 전문용어를 사용하면서 경찰과 같은 전문가라는 신뢰도를 높이려는 의도도 숨겨져 있다.
전문용어만 잘 알아듣고 줄임말만 잘 이해해도 사회생활이 한결 쉬워지고 전문용어를 양념처럼 사용하면 어느새 전문가 대접을 받는 현실이 약간 부끄럽기는 해도 생활의 지혜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전문용어를 쓰고 줄임말에 축약된 의미를 간파하며 인생의 코드를 풀어가는 것도 전문화 시대의 생존전략이다.
김연신 / 사회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