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업소에서 26년째 일하고 있는 모니카 김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터에서-봉제업소 26년 근무 모니카 김 씨
같이 일하던 한인 모두 떠나…
‘피스웍’서 ‘패턴메이커’로 발전
신규 한인 이민자들에게 생소하게 들리는 ‘남청여봉’이란 말이 한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 유행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단어는 오래전 이민 온 한인들이 고생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 말은 LA한인타운의 경제가 빈약해 일자리가 많지 않았던 때 먹고 살기 위해 남자는 청소, 여자는 봉제업소에서 일했던 것을 축약한 표현이다.
“봉제업소에서 같이 일하던 한인들이 하나 둘씩 떠날 때마다 나는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때로 서글픔을 느끼기도 했지요.”
하지만 모니카 김(58)씨는 “주어진 일이 있어 세월을 허비하지 않았고, 바느질을 하면서 소박했으나 편안한 삶을 살아온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남청여봉’이란 말에 친숙한 감정을 갖고 있는 이민 세대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로 26년째 봉제업소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근무했던 봉제업소 종업원 50여명 가운데 절반이 한인일 정도로 당시에 많은 한인들이 바느질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 김씨가 일하는 LA다운타운 ‘Y & J’의 종업원 35명 가운데 한인은 그를 포함, 3명에 불과한 것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김씨는 “근무시간도 길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니까 한인들이 봉제업소 근무를 기피하고 있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격상 한번 정착하면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지금까지 한번도 아프지 않아 결근 없이 일해 왔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김씨는 1978년에 이민왔다. 1980년 남편과 사별하는 바람에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 당시 한인들의 가장 많이 일을 했던 봉제업소에 발을 들여 놓게 됐다. 처음에 피스웍으로 일을 했으나 이젠 패턴 메이커로 일을 하고 있다. 디자인에 따라 기본 옷본을 제작하는 일 등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그만 둘 의향이 없다고 했다. “기술이 있으니까, 늘 하던 일이니까, 이제는 별로 힘든 것도 몰라요.” 밝게 웃는 모습 속에 성실함을 바탕으로 한 그의 삶도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동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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