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재판’에서 마침내 세탁소 주인이 이겼다. 흑인 판사가 한인 세탁소 업주를 상대로 5,400만달러 바지소송을 제기했을 때 한인들이 가장 의아했던 것은 “저런 사람이 어떻게 판사가 되었나”하는 점이다. 소송 내용이 너무나 상식에 어긋났다. 더구나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가 현직 판사였기 때문에 미국 사법제도의 체면과도 관계가 있었다. 상식을 잃은 판사에 대해 법원이 어떤 상식적인 판결을 내려야 하는가. 법조계의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로이 피어슨이라는 흑인 판사와 세탁소 업주 정진남씨 사이에 벌어진 이 소송이 2년간이나 계속되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상식으로 판단되는 재판을 질질 끌어 국민 세금을 낭비한 데다 판결이 연기되는 동안 변호사 비용이 10만달러에 이르는 등 세탁소 주인이 받은 정신적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판사가 두 번이나 교체되었다.
화풀이를 하자면 소송에 이긴 정씨 부부가 거꾸로 피어슨을 상대로 5,400만달러 소송을 내도 시원찮을 지경이다. 재판에서 이겼지만 정씨 부부가 받은 물질적·정신적 상처는 너무나 크다. 피어슨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동네 주민들에게 정씨 세탁소를 이용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전단까지 뿌리며 다녀 손님도 줄었다. 이 정도가 되고 보면 피어슨은 판사로서 자격이 있는지 정신감정을 받아야 할 대상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인물이 법원에서 판사 자리에 앉아 판결을 내리는 광경을 상상하면 끔찍한 생각이 든다.
영세업주인 한인들은 소송에 약하다. 말도 안 되는 소송인 줄 알면서도 이겨봤자 변호사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보상해 주는 경우가 하나둘이 아니다. 법을 아는 자가 법을 악용 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나 많은 것이 미국 사법제도의 취약점이다.
만약 정씨 부부가 돈이 없어 변호사를 사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당히 불리한 판결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을 담당했던 첫 번째 판사는 쌍방의 합의를 계속 권유해 세탁소측이 바지 값으로 1만2,000달러를 보상 제의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을 맡은 바트노프 판사가 23페이지에 이르는 판결문을 읽으면서 큰소리로 “소비자는 보호되어야 하지만 법의 악용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고객만족 보장은 고객의 불합리한 요구까지 만족시킨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원고를 나무란 것은 소비자 보호 재판사에 기록될 만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상식과 억지의 대결에서 상식이 이긴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피어슨은 소송에서 줄곧 세탁소가 내건 ‘만족 보장’이라는 글귀를 세탁소가 어겼다는 것을 물고 늘어졌었다.
그러나 이번 소송이 한인들에게 준 교훈도 있다. 사건의 발단이 감정싸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처음 단계에서 수습될 수 있었는데도 업소측이 “우리는 잘못이 없다”는 주장을 너무 강경하게 표현하다가 고객의 분노를 사게 된 것이다. 한인 업소들이 고객에게 좀 더 친절할 필요가 있다.
피어슨이 자기 바지가 아니라며 찾아가지 않아 세탁소에서는 법정에 제출했던 그의 바지를 어떻게 하나 고민 중인 모양이다. 억지로 피어슨에게 줄 필요가 없다. 그 바지는 언젠가는 한인 이민사 박물관에 전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clee@koreatimes.com
이 철 /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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