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6일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펼쳐진 D-Day다. 미국은 진주만 기습을 당한 12월7일은 치욕의 날로 여기는 반면 D-Day는 승리의 날로 기념한다. 이상하게도 일본이 미국에 항복한 날(8월15일)에 대해서는 미국인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독일군은 정말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까.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관한 영화를 볼 때마다 기자는 “독일군은 무엇하고 있었지?”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독일군이 너무 맥없이 무너지는 장면만 나오기 때문이다.
노르망디 해안에서 60마일 떨어진 곳에 ‘캉’이라는 큰 도시가 있다. 독일군은 무엇하고 있었을까의 의문은 프랑스 정부가 ‘캉’에 세운 전쟁 박물관을 돌아본 후 풀렸다. 박물관에는 2차 세계대전뿐만 아니라 1차 세계대전에 관한 것도 전시되어 있는데 전쟁박물관으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에 속한다.
여기서 상영하는 노르망디 기록영화가 흥미진진하다. 하나의 대형 화면에서 두 개의 기록영화가 동시에 펼쳐지는데 왼쪽은 미군과 영국군의 노르망디 공격 장면이고 오른쪽은 독일군의 노르망디 방어 장면이다. 준비에서부터 공격에 이르기까지 같은 시간 연합군과 독일군이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대조한 특이한 기록영화다. 독일군이 찍은 필름을 박물관에서 구해 편집한 것은 매우 프랑스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록 영화를 보면 독일군은 연합군의 상륙을 예견하고 있었으나 히틀러가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기는 바람에 노르망디 전투에서 실패했으며 그 원인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독일군 최고 지휘관의 불화다. 해안수비 군사령관인 롬멜은 해안에 기갑부대를 배치해 연합군이 육지에 올라오기 전 박살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상관인 서부 총사령관 룬스테트 원수는 연합군이 어느 쪽으로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에 기갑부대는 2선에 배치해 놓았다가 적이 상륙하는 지점으로 달려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히틀러는 룬스테트의 손을 들어주었다.
둘째는 히틀러의 오판이다. 히틀러는 연합군이 편 위장전술에 말려들어 벨기에와 프랑스 국경 사이에 있는 빠드칼레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해 이곳에만 신경을 썼다. 노르망디 공격 1차보고를 받았을 때도 빠드칼레 공격을 숨기기 위한 위장전술로 여겼을 정도였다고 한다.
셋째는 노르망디 해안에 배치된 독일군 사병 중 체코, 헝가리, 폴란드에서 강제 징집한 오합지졸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목숨을 바쳐가며 연합군과 싸울 의사가 없었다.
히틀러가 롬멜의 말을 따랐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완전히 실패했으리라는 것이 영미 퇴역장성들의 분석이다. 히틀러의 고집으로 엄청난 숫자의 독일군이 죽어가자 젊은 장교들이 히틀러를 제거하는 길만이 독일 국민이 살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실행에 옮겼으나 실패했다. 롬멜은 이 암살모의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된 후 자살했다.
독일군의 적은 연합군이 아니라 자신들의 총사령관인 히틀러였다. 막강한 파워를 가진 지휘관이 오판하여 고집을 부릴 때 부하들이 어떤 희생을 겪어야 하는가를 보여준 교과서가 독일군의 노르망디 패전이다.
2004년 6월6일 노르망디 미군 묘지에서 거행된 D-Day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콜 독일 수상의 연설은 명언이다. “연합군은 독일에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독일을 구한 것입니다.”
clee@koreatimes.com
이 철 / 이 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