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입술의 스칼렛 조핸슨이 유혹적인 자태로 흡연하고 있다. <영화 ‘검은 달리아’>
할리웃 영화 75%가 담배 마구 피워대
청소년 건강에 해악… 퇴출 압력 강화
20세기 중반 이래 요즘 영화들이 영화 장면 중에 배우들의 흡연 모습을 가장 많이 담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타임지에 따르면 지난해 US 샌프란시스코가 조사한 할리웃 영화의 75%가 흡연 장면을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 중 36%가 어린 아이들이 부모나 성인의 동반 없이도 입장할 수 있는 동급 G와 PG 영화라는 점이다.
미질병 통제예방센터가 2002년, 2004년, 2005년 및 2006년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대들이 흡연을 하게 되는 주원인은 영화 속 흡연 장면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담배를 피우지 않던 10대가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영화 속에서 흡연하는 장면을 보고 나서 따라 할 가능성이 16배나 높다고 말했다.
배우들이 영화에서 흡연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40년대와 50년대 범죄 영화 필름 느와르가 유행했을 때 너도 나도 흡연했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들인 형사와 범죄자는 물론이요 이 장르의 필수 요소였던 남자 잡는 여자 팜므 파탈(femme fatale)들도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왕년의 글래머 스타 에이바 가드너와 글로리아 그래암 및 리타 헤이워드 등이 요염한 자태로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신 뒤 한숨 쉬듯 내뱉는 연기에 봉 같은 남자들은 취해 범죄를 저지르곤 했었다.
그런데 ‘고독한 곳에서’ 등 여러 편의 필름 느와르에 나온 험프리 보가트는 흡연으로 인한 암으로 사망했다. 율 브린너도 마찬가지. 지난해에 개봉됐으나 비평가의 혹평 속에 흥행서도 실패한 브라이안 드 팔마 감독의 필름 느와르 ‘검은 달리아’에서도 요부로 나온 스칼렛 조핸슨이 자극적인 빨간 입술로 담배를 피웠었다.
영화 속 흡연 장면 중 가장 로맨틱한 것은 1942년작으로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의 드라마인 ‘자 항해자여’(Now, Voyager)의 장면일 것이다. 두 주인공 베티 데이비스와 폴 헨리드의 달밤 항해하는 여객선 갑판 위에서의 장면. 헨리드가 답배 갑에서 담배 두 개비를 꺼내 함께 자기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뒤 데이비스에게 건넨다. 담배를 통한 접순 없는 키스신이 참으로 로맨틱하다. 최근 영화로 ‘검은 달리아’와 함께 주연 배우가 줄담배를 피운 영화가 올해 오스카 작품과 감독상 등을 받은 ‘디파티드’와 2005년작 ‘허슬 앤 플로’. ‘디파티드’에서는 보스턴 갱두목으로 나온 잭 니콜슨이 그리고 ‘허슬 앤 플로’에서는 랩스타 지망생인 핌프로 나온 테렌스 하워드가 줄담배를 태웠었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카리스마 있는 배우들이 흡연을 하는 장면처럼 훌륭한 담배 광고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대들은 자기가 우상시하는 스타의 흡연 장면을 보고 이를 따라하는데 10대에 흡연을 시작한 사람 중 52%가 이런 경우다.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은 부모가 흡연 안 하는 집의 10대들이 영화 속 흡연에 접했을 경우 자기도 흡연을 시작할 가능성이 4배나 된다는 사실이다.
1970년 TV에서 담배광고를 금지시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 뒤로 담배회사들은 영화사에 돈을 주고 자사 제품을 영화 장면에 넣도록 로비를 해왔다. 담배회사 중 가장 영화에 많이 자사 제품을 등장시킨 것은 말보로로 지난 15년간 74편의 빅히트 영화에 말보로가 나왔다. 그러나 영화에 돈 내고 자사 담배를 소품으로 등장시키는 것은 1998년에 금지됐다.
현재 영화 속 흡연 장면 퇴출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단체가 하버드의 공중보건대학. 배리 블룸 학장은 “어떤 영화는 1시간에 무려 14번이나 흡연하는 장면이 있다”면서 “우리는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질병예방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는 1999년부터 영화 속 흡연 장면을 퇴출시키기 위해 영화사 고위 간부들을 1대1로 면담하고 있는데 지난해에 미영화협회는 블룸 학장을 초대, 모든 메이저 스튜디오 간부들 앞에서 하버드의 취지를 설명하도록 했다. 블룸 학장의 조언은 간단하다. ‘담배를 완전히 영화에서 몰아내던지 아니면 적어도 흡연을 미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같은 조언이 먹혀들었는지 지난해에 나와 빅히트한 패션계 풍자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무대가 뉴욕과 파리인데도 흡연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영화 속 흡연 장면 퇴출 압력은 갈수록 무게를 더 하고 있다. 미의학협회 등 여러 단체는 영화와 TV에서의 흡연 장면 삭감을 촉구하고 나섰다. 또 미 41개 주의 검찰총장들은 최근 흡연 장면이 있는 DVD는 본 영화가 시작하기 전 공익광고를 내도록 하라는 탄원서에 서명을 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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