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파리 드골 공항에서 목격한 일이다. 입국수속을 밟으려고 줄서 있는데 내 옆 남자가 메고 있는 가방 속에서 뭐가 갑자기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강아지 푸들이 얼굴을 내민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까 이 가방이 보통 고급 가방이 아니다. 가죽으로 만든 샤넬제품인데 애견용으로 특별히 디자인된 것이었다. 강아지 주인인 프랑스 남자는 가방 속에서 물병 등을 꺼내 애견을 먹이는데 그 각종 기구가 희한한 것들이고 마치 어머니가 어린 아기 다루는 것처럼 정성을 쏟았다. 갑자기 우리 집 개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는 개의 천국이다. 레스토랑에서 주인과 함께 앉아 먹는가 하면 기차에서도 의젓하게 자리를 차지한다. 아침에 공원에 나가 보면 추울까 봐 외투를 입혀 데리고 다니는 여성들이 많고 시에도 개똥만 치우는 청소부가 따로 있다. 개를 위한 미장원은 물론이고 의상점, 완구점, 전용 레스토랑까지 있고 큰 호텔에서는 대부분 개를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에도 요즘 개 사랑 붐이 일어나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는 홍수나 태풍 경고가 있을 경우 주정부가 애완동물 긴급 피난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않으면 연방정부가 FEMA 지원금을 보류하는 법안이 하원에 상정되어 있을 정도다. 왜냐하면 카트리나 수재 때 4만여마리의 애완동물이 물에 떠내려가 행방불명되었고 어떤 노인들은 애견을 남겨놓고 피난할 수가 없어 당국의 명령을 어기고 개와 함께 집에 있다가 죽은 케이스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현행법은 보트나 헬기가 수재민을 구출할 경우 애완동물은 태우지 못하게 되어 있다.
시카고에서는 요즘 개를 식당에 데리고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고 군에서는 이라크에 파병되는 독신 병사들의 애견을 돌볼 수 있는 포스터 홈 자원봉사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잃어버린 개를 찾아주는 사립탐정소도 등장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애견 강의에 주부들이 앞을 다투어 몰려든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내셔널 지오그래픽 TV 채널을 보니까 오하이오주 어떤 도시에서 “어떻게 하면 개를 잘 기를 것인가”를 주제로 한 강의가 있었는데 1,700명의 청중이 강당을 메울 정도였다. 강사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애견 사육전문가 시저 밀란이었는데 그의 지론은 “개보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우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개 사랑이 지나쳐 애견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개를 버릇없이 키워 놓았다고 했다.
밀란의 주장은 개가 사람을 다스리면 안 되고 사람이 개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개가 반드시 훈련받아야 하며 훈련받지 않은 개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언젠가는 개의 의무교육 제도가 시행될 것 같다. 영국이 지금 그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교육받은 개에게 명찰을 달아주고 있다.
왜 애견 붐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인간사회에서 사랑이 점점 메마르고 독신 인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독한 사회의 대안으로 애견 붐이 등장한 것이다. 개는 복종심 하나로 인간에게 사랑을 받는 동물이고 그것도 보통 복종이 아니라 무조건 복종이라는데 특색이 있다. 주인이 홈리스 피플인데도 한 마디 불평 없이 졸졸 따라다니는 개를 보면 그 충성심에 감탄할 뿐이다. 사냥개, 집 지키는 개 시대는 지났다. 개의 인간 가족화 시대의 문이 열리고 있다.
clee@koreatimes.com
<이 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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