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직후 미국에서 정치인이 이라크 침공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온다는 것은 굉장한 도박이었다. 2002년 여름 시카고의 페더럴 플라자에서 전쟁반대 집회가 열렸는데 어느 젊은 주상원의원이 단상에 올라와 군중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다면 미군은 무기한 주둔해야 하며 엄청난 예산이 소비됩니다. 국제적인 지지 없이 이라크를 침공하면 미국은 고립될 것이며 반대로 아랍 국가들은 이를 기회로 단결할 것입니다. 나는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전쟁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 젊은 주상원의원은 바라크 오바마였다. 오바마는 이때 이미 앞으로 닥칠 미국의 난관을 정확히 예언한 셈이다. 더구나 그는 정치생명을 걸고 이라크전을 반대했으며 이와 같은 용기 때문에 그가 유명해진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에게 한 점수 뒤지는 부분이 바로 이라크전이다. 힐러리는 부시의 이라크전을 찬성한 빨간 줄 경력을 갖고 있는데 비해 하원의장인 펠로시나 오바마는 처음부터 이라크 전쟁을 반대해온 까닭에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오바마는 흑인 정치인이지만 어머니는 백인이다. 아버지는 미국에 유학 온 케냐 흑인 학생으로 하와이대학 졸업 후 하버드에서 Ph.D를 마치고 케냐로 다시 돌아가 고위직 공무원으로 있다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의 성장과정은 묘하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와이대학 러시아어 수강생으로 알게 되어 결혼하게 되었는데 결혼식 사진을 보면 가족들이 없다. 양쪽 가족이 모두 불참했던 것 같다.
오바마 아버지는 혼자 케냐로 돌아갔다. 오바마의 어머니는 그 후 오일업에 종사하는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하여 딸을 낳았으며 자카르타로 이주했다. 오바마는 그 후 하와이에 있는 백인 외할아버지에 맡겨져 자라게 된다.
오바마가 출세할 수 있었던 힘의 배경은 무엇인가. 그의 뛰어난 학벌이다. 흑인이면서도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의 오늘이 있게 된 것이다. 그는 하와이의 명문인 푸나후 고교를 졸업한 후 캘리포니아 옥시덴탈 대학과 하버드 법대를 졸업했으며 특히 흑인으로는 처음 하버드 법대 신문 편집장을 지냈다. 그리고는 워싱턴의 유명한 법률사무실 유혹을 뿌리치고 시카고의 빈민촌에 들어가 소셜워커로 일했다. 그는 흑인이지만 아이비리그 출신 흑인이며 백인 가정에서 자란 특이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바로 이러한 백그라운드 때문에 그에게는 일반 흑인 정치인과는 달리 백인 지지표가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 11일 링컨이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일리노이주의 스프링필드에서 민주당 대선후보를 선언했다. 그의 선거구호는 “YES, WE CAN!”이다. 그는 지금 ‘미국 정치계의 록스타’다. 젊은이들의 우상이며 흑인과 백인 진보파의 희망이다. 가는 곳마다 그의 손을 잡으려는 군중들에 둘러싸인다. 흑인과 백인사회에서 동시에 지지 받는다는 것 - 이것이 그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만약 그가 힐러리 클린턴과 내년에 러닝메이트를 이룰 수 있다면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가장 볼만한 선거가 될 것이다.
<이 철>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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