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의사소통의 도구로 쓰이지만 자신의 표현이기도 하다. 내과 의사가 심장박동과 호흡을 청진하듯이, 정신과의사는 한 인간의 발상법과 가치관등 마음의 박동을 그의 말을 경청함으로써 알 수 있다.
첫 면담시 “난 미치지 않았어요” 라고 말문을 여는 사람도 있고 “나는 호모가 아니어요”라며 대드는 환자도 있다. 이런 한마디를 통해서 자신의 고민, 망상, 강박 혹은 불안의 원인을 적나라하게 노출한다.
“이러다가 내가 미치는 것이 아닐까요?” “저 같은 환자를 보신 적이 있는지요?” “이 분야에서 일하신 지가 얼마나 되는지요?” 등 무심코 던진 질문을 통해서도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 보인다. 제일 힘든 환자는 도무지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이다.
지난여름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들을 모아놓고 “내가 잘못한 것이 무어냐”라고 따진 적이 있다. 국민 지지도가 한자리 숫자인 대통령이 던지는 질문치고는 황당하고,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이에 대한 해답은 ‘바다이야기’에 대한 대통령의 변명에서 밝혀졌다. “정책적인 잘못은 있었지만, 비리는 없었다” 고 떳떳이(?) 말했는데, 이 한마디를 통해서 그는 자신의 가치관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비리는 없었다는 ‘떳떳함’(?)으로 정책 착오의 ‘사소함’(?)을 덮어 버리려는 대통령의 발상이 놀라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아직도 국민들 마음속에 살아있는 것은 그가 비리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성공한 경제정책 때문이었고, 근세 미국 대통령 중에 가장 인기도가 낮았던 카터 대통령도 비리 때문이 아니고, 그의 실패한 정책 때문이었다. 국민들이 부(富)해지고, 국가가 강(强)해지는 정책을 펴고 성공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지도자의 비리는 용서하게 마련이다.
노 대통령의 평가척도는 ‘비리’ 유무인 것 같다. 이 척도로 잴 때 자신은 깨끗하고, 당연히 지지도가 높아야 할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니, 정책 성공여부를 평가 척도로 쓰는 국민들의 한자리 수 지지도에 분노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자기표현을 분석해 보면 그의 첫째 문제점은, 자신의 나이나, 위치, 직분, 그리고 공석/사석에 맞는 표현 능력의 결함이다. ‘실언’이라는 변명도 하겠지만, 실언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정신분석의 자료가 된다. 다듬어지지 않은 실언을 통해서 진솔한 자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의 사고에는 투사의 경향이 심하다. 투사란 정신의학 용어로서 잘못된 일을 ‘네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다. 내 탓으로 받아들이고 소화시키기에는 자아가 너무 약한지라 “그건 너, 너 때문이야”를 외치게 된다. 그가 택한 투사 대상은 ‘있는 사람’‘배운 사람’‘기득권자’였지만, 최근에는 온 국민들이 포함되는 것 같다. 이런 투사현상은 편집성 혹은 나르시스성 성격장애자에게서 흔하고, 심해지면 피해망상이 된다.
셋째는 이분법적 발상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흑과 백, 내편 네편, 있는자 없는자 등의 흑백논리이다 보니 국민들을 둘로 갈라놓고 갈등시키게 되었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세상을 총 천연색을 보지 못하는 ‘흑백 색맹적’ 사고방식이 심했다.
끝으로 그는 자신의 ‘관념의 감옥’에 갇혀 사는 것 같다. 자주국방, 과거사 정리, 남북관계, 평등, 사학법 개정 등 그가 다룬 정치이슈들은 모두 현실을 무시한 채 그럴듯한 관념 속에 빠지면서, 국정의 우선순위도 현실성도 잃어버리고 선동적인 경향만 심했다.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는” 이들이 많은 세상에서 자신만은 할 말 다하고 살겠다는 독단의 지도자를 뽑은 것은 바로 한국민들의 책임이다.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그 대가를 치루며 책임을 통감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세월은 빠르게 지난다는 것을 감사하며 다음 지도자를 뽑을 때는 한국민들이 좀 더 신중해야 하겠다.
<정균희> UCLA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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