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서 열자(列子)에 따르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뜻의 한자성어 기우(杞憂)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두려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기 나라 남성의 고사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열자에 등장하는 이 소심하기 그지없는 남성은 요즘 개념을 빌어 말하자면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 엄청난 자연 재앙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3,200여년 지난 지금, 환경론자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천지개벽’의 대변화를 걱정하고 있다. 만약 이들의 주장이 잠꼬대가 아니라면 기 나라 남성이 두려워했던 자연 재앙의 그림자가 인류의 머리 위에 나지막이 드리워져 있는 셈이다.
지구온난화는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현대문명의 부산물이다. 화석연료를 연소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대기권에 두꺼운 층을 형성, 지상의 복사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차단함으로써 기온상승을 유발하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지난 2005년, 우주의 ‘녹색 별’ 지구는 65만년만의 최고 평균기온을 기록했다.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자연 재앙의 시나리오는 너무 심각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세계은행 부총재 출신인 영국의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 경은 토니 블레어 총리의 위촉에 따라 작성한 보고서에서 “즉각적인 온난화 방지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적으로 수억명이 굶주림과 물 부족, 홍수 등으로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지구 온난화를 방치할 경우 전 세계가 치러야할 경제적 대가는 1, 2차 세계대전 비용을 합친 것보다 많은 9조6,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지구 온난화를 다룬 90분짜리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을 내놓은 앨 고어 전 부통령도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머지않아 플로리다 지역과 상하이, 뉴욕 등 일부 대도시의 40% 이상이 물에 잠기고 네덜란드는 아예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빙하를 식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전 세계 인구 중 40%가 심각한 식수난에 직면하고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카트리나와 같은 초특급 허리케인의 발생 빈도가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도 곁들여졌다. 게다가 이 모든 ‘예언’이 이루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야 20년”이라는 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고어가 지적하듯 미국은 전 세계 온실개스의 30%를 내뿜는 세계 최대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이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국내 산업보호 차원”에서 선진개발국의 이산화탄소 방출규모를 줄이려는 교토협약에서 탈퇴했다. 교토협약이 정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을 규제할 경우 미국의 산업계, 특히 에너지와 자동차 산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부시 행정부의 교토협정 탈퇴를 못마땅해 하지만 환경관련 문제에 관한 한 미국민들의 태도는 미온적이거나 모호하다. 올해 중간선거에서는 물론 2004년도 대선에서도 환경문제는 후보들의 당락에 영향을 미칠 만한 핵심 이슈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점은 지구 온난화에 대한 ‘환경 파수꾼들’의 우려가 결코 기우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남극의 빙붕을 붕괴시키는 지구 온난화의 부작용은 공화당 소속인 제임스 인호프 연방 상원 환경위원회 위원장의 주장대로 “진보주의자들의 사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진행형’의 현실이다.
‘발작’이라는 시에서 황지우 시인이 노래했듯 지구는 광대한 우주에서 ‘초록빛과 사랑’이 있는 유일한 별이다. 이렇듯 아름다운 ‘우주의 기적’이 인간이 발작하듯 토해내는 공해로 무지막지한 ‘환경 테러’를 당하고 있다. 고어의 ‘예언’이 아니더라도 이젠 정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지구를 지켜라.
<이강규> 국제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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