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이 되면 정말 고민스런 사람이 있다. 이라크 복무 장병의 사망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하는 전사통보 연락관이다. 흩어졌던 가족들도 모이는 이 날 누가 죽었다는 비보를 들고 유가족을 찾아간다는 것은 고역 중의 고역임에 틀림없다. 어느 미국 시사주간지에 전사통보 연락관의 고민이 보도된 적이 있는데 이 직책이 얼마나 수행하기 어려운 것인가를 실감케 한다.
이라크전 해병 전사자 연락업무를 맡고 있는 스티브 벡 소령(40)은 자신의 임무수행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때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라고 말하고 있다. 전사자의 집을 찾아가 문을 노크하고 “누구누구에 관한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을 끄집어냈을 때의 가족들의 표정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스런 얼굴이라고 했다.
어떤 전사자의 가족들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벡 소령에게 저주하는 욕을 퍼부으며 “우리 집에서 나가주시오”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벡 소령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기자가 본 전사자 유가족 기사 중에 가장 잊혀 지지 않는 케이스는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지에 보도된 캐서린 캐시(23)라는 여성이 흐느끼다가 지쳐 남편의 관 옆에서 이불을 깔아놓고 잠든 사진이다. 그 옆에는 해병대원이 어울리지 않게 보초를 서고 있었다. 해병대 사병인 남편은 지뢰폭발로 이라크에서 사망했는데 묘지에 묻히기 전날 밤 부인 캐서린이 남편의 관 옆에서 기어코 자겠다고 우기자 당국이 이를 받아들여 경비병까지 배치해 준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그녀는 남편이 평소 즐겨 듣던 음악을 밤새 틀어놓았다고 한다.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웨스트포인트 역사상 여성으로 첫 생도대장을 지낸 에밀리 페레지 소위의 죽음이다. 그녀는 최근 바그다드 외곽에서 순찰을 돌다 지뢰가 터져 목숨을 잃었다. 페레지 소위의 장례식은 지난달 웨스트포인트에서 거행되었다. 이라크에서 희생된 40명째의 웨스트포인트 출신이며 여군으로서는 64명째다. 오늘 현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전사자 수는 3,183명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우리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것은 이라크에 파견된 한인들의 전사소식이다. 며칠 전 아들 김정호 일병의 전사소식을 듣고 슬픔을 참느라고 애쓰는 부모들의 모습에서 많은 한인들이 충격을 받았으리라고 생각된다. 기자의 주변에도 자녀들을 이라크에 보낸 사람들이 여러 명 있는데 이들은 집 근처에 군인이 나타나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한다고 털어놓았다. 밤에 영어로 전화가 걸려오기만 해도 이라크로부터 전해져 오는 나쁜 소식이 아닌가 싶어 놀란다는 것이다.
전사통보 연락관 스티브 벡 소령은 자신이 슬픈 소식을 전하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돌아와서 아들딸들을 끌어안을 때, 그리고 가족이 한 자리에 앉아 저녁식사를 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전에는 미처 몰랐다고 한다.
추수감사절에 무엇을 감사 할 것인가. 전사통보관 벡 소령이 우리에게 피부에 닿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철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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