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릭-캐널 스트릿 코너에 자리한 시어즈 홀딩스 코퍼레이션의 디자인센터. 개방적인 실내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시어즈, K마트를 위한 디자인 센터에 마네킹들은 정장 스타일 마네킹으로 가득 찬 이 회사의 본부와는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르다.
“유행 잡자” 대형할인점들 뉴욕에 디자인센터 오픈 붐
시어즈-K마트, 뉴욕 직원 100여명 ‘유행창조’ 비지땀
월마트, 유명디자이너 스카우트 ‘메트로7’ 등 브랜드 출시
콜스, 톱디자이너 삼고초려 옷·신발·가정용품 디자인 계약
위스콘신주 메노모니 폴스는 뉴욕 의류상가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콜스(Kohl’s)와 같은 대형 할인소매점은 오랫동안 뉴욕과 거리를 두고 있는 데 만족해 했다. 하지만 콜스를 위해 일하던 디자이너가 더 이상 위스콘신까지 비행기를 타고 출장가길 원치 않았다. 뉴욕에도 얼마든지 일할 곳이 많기 때문이다. 콜스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현실인식을 하게 됐다. 다른 주서부와 남부 의류업소와 마찬가지로 살길을 찾기 시작했다. 유일한 방도는 뉴욕에 사무실을 내는 것이었다. 고답적이고 전통적인 분위기를 강조해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유행의 첨단을 걷는 뉴욕에 진출해야 좀 더 빨리 시대의 흐름을 읽고 적응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아칸소에 본부를 두고 있는 월마트, 일리노이에 터를 잡은 시어즈, 미시간에 둥지를 튼 K마트도 이미 수년 전에 뉴욕에 디자인 센터를 오픈했다. 본사에서 주로 다루는 정장 스타일 또는 전통적인 드레스 코드를 고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뉴욕의 전문 디자인 회사에 의지해 왔다. 그러나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이들 대형 할인점들은 이제 생각을 달리한다. 직접 디자인 센터를 만들어 신속하고 첨단 유행을 따라가고 창조해나가려 하고 있다. 고가 백화점 옷 디자인에 못지않은 세련된 디자인으로 저가 의류를 공급해 고객을 잡겠다는 계획이다.
샤론 스톤의 결혼 드레스를 디자인에 화제가 됐으며 뉴욕 디자인 업계에서 정상을 달리고 있는 베라 왕을 ‘모시기’ 위해 콜스 경영진이 삼고초려 했다. 위스콘신에서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가 디자인 해 달라고 당부했다. 경비도 많이 들고 시간도 여간 많이 소모되는 게 아니었다.
왕은 지난 8월 콜스를 위해 옷, 신발, 가정용품의 디자인을 해주겠다고 승낙했다. 그래서 콜스는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뉴욕에 디자인 센터를 차렸다. 디자이너 왕을 위스콘신과 뉴욕으로 오라, 가라 하는 것보다 유행을 앞서가는 뉴욕에 머물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저가 의류를 다루는 대형 할인점들로서는 이런 방법을 써야만 멋들어진 옷을 만들면서 동시에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들 저가 대형할인점들은 유명 디자이너들이 고급 백화점에 제공한 디자인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저가 할인점들은 1년 뒤 일단 고급백화점에서 한물간 의류를 모아 디자인을 살짝 바꿔 다시 매장에 내놓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다보니 이미 유행이 지난 디자인이 매장에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다. 소비자들은 싼 맛에 이런 옷들을 샀다. 그런데 이젠 뉴욕에 디자인 센터를 오픈한 덕에 고급백화점 디자인에 손색이 없는 디자인으로 제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어즈의 상품구매 담당 리사 슐츠는 “뉴욕에 디자인 센터를 오픈한 덕에 우리도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 대형할인점들은 여전히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기존 패션 디자이너들의 텃세를 고려해서다. 저가 상품을 파는 주제에 어디서 명함을 내밀려 하느냐는 기세를 감지해서다. 그래서 아직은 광고도 요란하게 하지 않고 심지어 디자인 센터 간판도 잘 보이지 않게 했다. 아예 간판을 내걸지 않은 곳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내실을 기하겠다는 의욕만은 확실하다. 시어즈-K마트 디자인 센터는 직원이 100명이 넘는다. 그리고 그 동안 본사에 머물던 디자인 총 책임자가 이 디자인 센터에 상주한다. 코빙턴, 재클린 스미스 등 시어즈와 K마트의 히트상품들 가운데 일부는 이제 뉴욕 디자인센터에서 변신에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디자이너들이 뉴욕 거리를 두루 다니면서 최신 유행을 파악하고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다.
싸구려 옷이란 ‘오명’을 안고 있는 월마트도 유명 디자이너들을 스카우트해 2003년 말 뉴욕에 디자인 센터를 오픈했다. 그리고 도시여성을 겨냥한 메트로7, 남성용 엑스코를 출시했다. 월마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유명 디자이너 마크 아이즌과 계약을 맺어 ‘멋없는 옷을 파는 곳’이란 이미지를 불식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콜스도 최근 브로드웨이와 37가에 디자인센터를 열었다. 일단 직원 30여명이 근무한다.
이들 대형 할인점들이 뉴욕에 눈을 돌리게 된 이유는 여럿 있다.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인 타겟의 변신이었다. 타겟이 뉴욕 유명 디자이너와 계약을 맺고 다른 대형 할인점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면서부터였다. 타겟의 이미지가 상승하고 매출이 늘면서 다른 할인점들이 고급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와 맞물려 유명 디자이너들도 저가 할인점들에 자신들의 디자인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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