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선거는 “누구를 지지해서” 표를 찍는 것이 아니다. “누가 싫어서” 투표하는 반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국 선거에서 왜 한나라당이 승승장구하고 있는가. 한나라당이 좋아서? 천만의 말씀이다. 국민들이 노무현을 싫어해 한나라당에 표를 던지는 것이다.
똑같은 현상이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도 일어났다. 민주당을 지지해서 표를 던진 것이 아니다. 부시가 싫어서 민주당에 표를 던진 것이다. 심지어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서는 부시가 나타나자 크리스트라는 공화당 후보(부시의 동생 제프는 임기만료로 물러난다)가 자리를 피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부시와 함께 사진 찍힐 경우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행동이다. 대통령이 자기 선거구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공화당 후보들의 바람이었으니 부시의 입장에서 보면 참을 수 없는 인격적인 모욕에 속한다.
선거에서의 내건 민주당의 구호는 간결했다. “당신은 미국이 지금 이대로 가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공화당을 지지하라. 당신은 미국의 변화를 원하는가, 그러면 민주당에 표를 던져 달라”였다. 한가지 기이한 현상은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이 TV 선전에서 자신이 공화당 후보라는 것을 밝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공화당 후보가 아닌 것처럼 “독립된 정치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점이다.
미국의 이번 중간선거는 부시에 대한 재신임을 묻는 투표의 성격이 짙었다. 공화당 후보에 표를 던진다는 것은 부시를 지지하는 것을 의미하고 부시를 지지하는 것은 현 이라크 정책을 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시와 이라크가 같은 이미지로 떠오른 것이 공화당의 ‘아킬레스 건’이었다. 부시에게는 호감을 가졌으면서도 부시의 이라크 정책을 싫어하는 일부 보수세력이 이탈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민주당의 작전은 치밀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고 계속 부시만 공격하라”. 이것이 일관된 민주당의 공격 전술이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낸 다음 소금 뿌리고 고춧가루 뿌리는 전법이다. “문제는 경제란 말이야, 이 바보야”라는 구호가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문제는 부시란 말이야, 바보야”가 선거의 주제였다.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 1994년 이후 12년만에 미국 의회의 판도가 바뀌는 셈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변화가 있다. 민주당이 다수가 되면 현 민주당 원내총무 낸시 펠로시(지역구 샌프란시스코)가 하원의장이 되어 미의회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 국회의장이 탄생하는 이변이 일어나게 된다.
올해 66세의 이탈리아계 낸시 펠로시는 전형적인 여장부로 리버럴하며 부시를 거침없이 공격하는 정치인이다. 그는 항상 “부시는 무능한 지도자”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19년 동안 하원의원에 재직한 펠로시는 선거기금 모금의 귀재로 알려져 있어 그의 신세를 지지 않은 민주당 후보가 없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리더십으로 연결되는 효과를 가져 왔다.
민주당이 단결된 모습으로 승리한 이면에는 펠로시의 일사불란한 리더십 역할이 크다. 그녀가 국회의장이 되면 우선 미군의 이라크 철수가 제일 먼저 중요 의제로 상정될 것이다. 이번 선거 이후 미국 정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궁금한 사람들은 앞으로 펠로시를 주시하면 그림이 잡힐 것이다.
<이 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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