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청담동에 가면 명품가게들이 즐비하다. 미국 촌사람 소리 듣지 않으려면 시간 있을 때 서울의 ‘명품가게’라는 것도 한번 보아둘 만하다. 수백만원짜리 프랑스제 여성 의류, 이탈리아제 가방, 노르웨이제 유모차, 독일제 테이블 세트 등 이름도 알 수 없는 최고급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명품가게들을 한번 돌아보고 나면 서울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샤핑할 때 왜 이상한 브랜드만 찾는지 이해가 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롤렉스나 구찌, 셀린, 샤넬, 까르띠에 같은 것은 명품세계에서는 클래식에 속한다. 요즘 서울 명품들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상한 이름의 상표들이다. 가짜명품을 서울말로 ‘짝퉁’이라고 하는데 짝퉁이 너무 범람하다보니 롤렉스나 구찌 같은 것은 진짜를 차고 다녀도 상대방이 “가짜겠지”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희귀한 이름의 고급 상품을 찾는 것이다. 중국 베이징의 미국 대사관 뒤에 가면 ‘짝퉁’만 파는 골목이 있는데 여기서도 한국인들이 중국인 다음가는 고객이다.
명품을 가지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이고 싶은 심리에서다. 차별화다. 그래서 ‘빈센트 앤 코’(가짜 명품시계)와 같은 어이없는 명품소동이 가능한 것이다. ‘빈센트 앤 코’ 소동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양극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준 본보기다. 한쪽에서는 먹고살기 어려워 일가족이 집단 자살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남과 다르게 보이고 싶다는 욕심 하나만으로 수천만원씩 겁 없이 뿌리고 다닌다.
세상은 알아주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이다. 명품을 부러워하고 그런 물건 갖고 다니는 사람을 사회가 알아주니까 너도나도 명품을 찾는 것이다. 물질 풍요가 가져온 사회적인 병리현상이다. 가치관이 잘못되어 있는 증거다. 내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 보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삶의 기준이 되어 있다.
‘빈센트 앤 코’ 소동은 이같은 한국사회의 병든 가치관을 교묘히 이용해 한탕 한 케이스다. 8만원짜리 한국산 시계를 영국 왕실에 납품하는 명품이라고 속여 600여만원에 팔아왔다니 그 상술(?)이 보통이 아니다. 더구나 소동을 일으킨 주인공 L씨가 미주 동포라는 것이 놀랍다.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안 먹히지만 한국에서는 먹혀 들어가는 비즈니스가 없을까를 궁리해 낸 기발한 발상이다. 한국에서 히트 친 상품을 미주한인 시장에 역수입하는 방법도 그럴듯하다.
명품소동에서 미주한인 비즈니스맨들이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한국에서 어떤 방법으로 시장을 개척해야 하느냐의 노하우다. 히트 상품이 되려면 첫째 비싸고 둘째 흔하지 않아야 된다. 이것이 한국인의 구매심리다. L씨와 같은 인물이 한국 대기업의 광고나 영업사원으로 취직해 정상적인 훈련을 받았더라면 유능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알게 모르게 한국의 그릇된 가치관이 미주 한인사회에도 조금씩 번지는 경향이 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한인사회의 허영 풍조가 눈에 띄게 드러나 보인다. 결혼식 축의금에서부터 장례식 조의금에 이르기까지 너무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재는 쪽으로 흐르고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의 존재가치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의 과시를 삶의 가치로 삼는 풍토가 한인사회 한쪽에서 형성되어 가고 있다.
잘못된 행동은 항상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도 좋고 돈이 들어오는 것도 좋긴 하지만 그릇된 가치관이 묻어 들어올까 봐 걱정이다.
이철 이 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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