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속설의 경제학’이란 말이 있다. 이론이 아닌 경험과 직관으로 경기흐름을 예측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장품 가게에서 빨간색 립스틱 판매가 갑자기 늘어나면 불경기 조짐이다. 빨간색 립스틱 하나만으로도 기본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 불경기에는 여러가지 색깔의 립스틱을 구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려지는 애완동물이 많거나 생명보험 해지율이 높을 때도 불경기다. 의류업계에서는 남자들이 구매하는 옷을 보고 호경기와 불경기를 가늠한다. 남자가 실크 같은 고급 소재의 화려한 옷을 고르면 호경기이고 바지나 재킷을 단벌로 구입하면 불경기다. 줄지어 늘어선 택시들도 불경기의 상징이다. 언론계에도 이같은 속설이 있다. 광고가 서서히 늘면 호경기이지만 갑자기 늘어나면 불경기 징조로 보고 대책을 세운다. 불경기 때에는 업소들이 이판사판으로 광고로만 승부를 걸기 때문이다.
요즘 이같은 속설의 징후가 타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부동산 열풍도 확실히 꺼졌고 척박한 세태 탓인지 한국 수재의연금 모금도 빈약하다. 한동안 사라졌던 불경기 얘기도 부쩍 늘어났다.
기자들은 사람들의 질문으로 불경기를 직감한다. 업주들이 다른 업소의 매상을 물어오면 불경기를 의심한다. 혹시 자기만 매상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매상이 오를 때는 관심이 없었던 일들이다. 다른 업소의 렌트를 물을 때도 그렇다. 렌트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 동안 계속된 호경기 바람이 서서히 식어 가는 분위기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산하 12개 연방준비은행들의 지역 경기 동향을 종합해 발간하는 베이지북도 미 경제가 둔화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호경기 뒤에는 반드시 불경기가 있다. 영원한 호경기는 없다. 이같이 예견된 불경기를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업주들의 몫이다. 눈앞에 다가오는 불경기라는 파도를 잘 타면 오히려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갈 수 있지만 파도에 휩쓸리게 되면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불경기에 씨를 뿌려 호경기에 거둬라’는 금언은 미국이 불경기에 내세웠던 모토다.
전세계 1억명 이상의 세계인들이 매일 아침 사용하고 있다는 질레트면도기, 미국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다는 3M 등은 굴뚝산업이 천대받던 하이텍 시대에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선택과 집중으로 우뚝 선 기업들이다. 어려울 때 다른 분야에 눈 돌리지 않고 자기 분야에만 씨뿌린 결과다.
많은 한인들이 불경기란 어려움에 봉착하면 하던 일을 손쉽게 포기하고 남이 하는 다른 일에 손을 댄다.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 듯 남이 하는 일은 모두 잘 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쟁 때문에 옆집도 죽고 자기도 죽고 만다.
다운타운 원단업자들이 불경기 징조가 나타날 때마다 ‘원단은 사양산업’이라 지레 생각하고 완제품 수입 또는 제품생산에 손을 대다 수없이 실패하고 돌아선 것은 좋은 예이다. 타운 내 식당들이 하루가 다르게 간판을 바꿔 다는 것도 그렇다.
그동안 부동산 호황을 타고 많은 한인들이 에퀴티를 뽑아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샤핑센터마다 업소들이 빼곡이 들어찼다. 이제 그들의 시험무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서비스를 점검하고, 자기 분야의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기술과 마케팅을 개발해야 한다. 불경기 극복은 안에서 찾아야 한다. 밖으로 눈 돌리기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핵심 역량에 더 투자해야 한다. 불경기라고 택시운전사가 연료비를 줄이기 위해 개스를 적게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대신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더 열심히 돌아다녀야 한다.
한번쯤 돌아보고 점검할 때다.
권기준 부국장·경제부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