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생활을 하면서 부모님의 인생과 내가 걸어온 길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은 우리의 가치관과 전통을 자녀들에게 어떻게 이어 줄까 하는 생각이었다.
자녀들이 장성하고 나면 각자 나름대로 생각이 뚜렷해져서 부모라 해도 의견을 강요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의 인생경험, 어려운 문제를 풀어갈 슬기 같은 것들을 적어서 후손들에게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다 보니 자연히 조상과 부모 형제자매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 수가 없게 되고, 이렇게 해서 싹튼 것이 사이버 족보에 대한 아이디어였다.
가족 웹사이트에 가족들이 제각기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사진도 넣고, 각자의 학력과 경력 같은 사항을 적어 넣으면 앞으로 후손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보존해온 전통적 족보는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많이 퇴색되어 있다. 사진도 없고, 부계 일색이고, 아주 특출한 조상 외에는 별다른 기록도 없다. 여자는 성과 본관이 전부일 때가 대부분이다. 특히 한문으로만 되어 있어서 이곳에서 자라는 후손들은 읽기가 힘들다.
우리의 조상들은 왜 족보를 만들어 생전의 기록을 후손에 남기려 했을까? 족보를 통하여 집안의 전통을 대대로 전하고 가풍을 이어 가려는 욕구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후손들에게 전통을 전하려던 선조들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지금 우리가 느끼는 바와 동일하다.
내가 사이버 족보를 만들라고 권유를 받은 것은 2001년께였다. 하지만 그때는 별로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여겼다. 내 마음을 바꾼 것은 2002년 월드컵 때 1세와 2세, 남녀노소가 모두 단결하여 응원하던 열기였다. 우리 민족은 단결을 못한다는 자기 비하의 소리를 많이 들어온 나에게 한인들이 한마음이 되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미주 한인들이 자손 대대로 하나가 되는데 도움이 될 일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만든 것이 사이버 족보였다.
미국이란 낯선 땅에서 개척자 정신으로 삶의 터전을 일군 1세들의 소중한 경험을 어떻게 하면 후세에 전달할 수 있을까. 우리 2세들이 부모가 고생을 많이 했다며 고마워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는 우리의 자손이 우리의 경험을 이어 받아서 우리가 쌓아온 기반을 더욱 튼튼히 하고 보람있게 만들었으면 한다. 사이버 족보는 그 좋은 매체가 될 수 있다.
지난 7월 초 타임에 소개된 학계의 최신 연구를 보면 우리 인생을 만드는 것은 첫째가 부모, 둘째가 유전자, 셋째가 형제자매의 영향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은 시간과 접촉을 갖는 사람들이 부모 형제자매이다.
미주이민 1세인 우리는 미국생활의 개척자인만큼 후손들에게 남길 정신적 정서적 유산이 특히 많다고 생각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생각, 경험, 경력 등을 사이버 족보에 기록해 두면 그 뜻이 자손 대대로 전달될 것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생일선물로 족보 사이트(http://www.kaft.net)를 선물할 수 있고,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인생경험을 영어로 번역하게 함으로써 세대간의 이해를 돈독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권대원
미주한인 사이버
족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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